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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교와 가톨릭 고통의 시기에 종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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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친구’ 라틴아메리카 랍비신학장 스코르카 랍비 밝혀

▲ 2014년 5월 예루살렘 성지순례 중 통곡의 벽 앞에서 어깨를 걸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스코르카 랍비.【CNS 자료사진】 ‘교황의 친구’ 아브라함 스코르카 랍비(65)가 지난 60여 년간 교황들이 유다교에 찾아와 대화하고 역사의 과오에 대해 사과한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부분적으로 “두 종교 간의 ‘고통스러운 시기’가 끝났다”고 밝혔다. 스코르카 랍비는 최근 「바티칸 인사이드」와의 인터뷰에서 △1986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역사적인 로마 유다교 회당 방문 △지난해 발표된 공동 연구 문헌에 ‘유다인에 대한 개종 의도가 없음’을 명시한 점을 고통스러운 역사의 한 장(章)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으로 꼽았다. 라틴아메리카 랍비신학교 학장인 스코르카 랍비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구다. 두 사람은 아르헨티나에서 종교적 신학적 주제를 갖고 나눈 대화를 엮은 대담집 「천국과 지상」(2010년)을 내기도 했다. 그의 인터뷰 발언이 유다교 공식 입장은 아니다. 역사의 종지부라는 것도 갈등과 오해가 혼재하는 2000년 역사 전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기를 말한다. 하지만 그의 평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화를 시작한 두 종교가 갈등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신뢰와 존중 관계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요한 23세 교황은 유럽과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변화를 주시하면서 대화에 나섰다. 앞으로 세상이 종교적 응답과 메시지를 많이 필요로 할 텐데 종교 간 대화가 너무 없다고 본 것이다. 유다교-그리스도교 관계 발전의 분수령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유다교 회당 방문과 베네딕토 16세의 깊은 신학적 성찰이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로마 회당 방문이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바티칸과 회당은 걸어서 20분 거리인데 그 여행이 수세기나 걸렸다. 교황과 랍비의 포옹은 이해와 대화의 신호탄이었다”고 말했다. 또 베네딕토 16세는 두 종교가 공동의 영적 뿌리와 유산을 갖고 있음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유대를 공고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 연구 문헌 「철회될 수 없는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에 “교회는 유다인들을 회심시킬 목적을 지닌 특정 선교 기구를 지원할 수 없다”는 구절이 들어간 것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로마의 경우) 광장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유다인 거주 지역이 있었는데 광장 옆 성당에 “나는 반항하는 백성에게 날마다 팔을 벌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멋대로 좋지 않은 길을 걷는 자들…”(이사 65 2)이라는 성구를 표지에 넣은 책이 비치돼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유다인들을 강제로 모아 놓고 개종 강론도 했다고 한다.” 그는 “공동 연구 문헌은 이 같은 슬픈 과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는 “베르골료(교황의 옛 이름)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우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그는 성경과 신학 연구를 통해 대화를 증진하고 두 종교가 협력해서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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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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