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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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할파파, 할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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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리 수녀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침마다 어린이집 앞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어린이의 모습으로 활기가 넘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는 동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손을 흔듭니다. 하교 시간이 되면 일찍 와서 손주를 기다립니다. 그러다 아이를 만나는 순간이 되면 마치 몇 년을 헤어져 있다가 만나는 가족처럼 부둥켜안고 대견해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풍경은 어느 드라마 못지않게 감동적입니다. 아이는 그날 있었던 수업내용에 대해 쫑알쫑알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수빈이 할아버지세요?” 하고 인사하면 “네, 제가 수빈이의 할파파입니다”, “저는 할맘입니다” 하고 응답하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아이의 부모가 맞벌이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반적인 돌봄을 맡게 되면서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할파파’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합성어, ‘할맘’은 할머니와 엄마의 합성어입니다.

부모가 바빠도 할머니 할아버지 가까이에서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들은 사람에 대한 낯가림이 적습니다. 마치 평소에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멀리서도 달려와 인사하며 안기기도 하고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부모마저도 보살필 수 없는 상황의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사람과 사람의 교감을 느낄 여유도 없이 학원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치고 인사를 해도 잘 응답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어르신들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자녀이고, 가장 어려운 사람도 자녀라고 말합니다. 품속에서 키울 때 가장 사랑스러웠지만 품을 떠나도 늘 그리운 존재가 자녀입니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하는 일이라면 사소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궁금합니다. 그저 목소리가 듣고 싶고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걸면, “바쁘다”며 “용건이 뭐예요?” 하고 묻는 자녀가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 미안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습니다.

자녀들 또한 전화를 건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기보다는 해야 할 일에 마음이 더 치우쳐 퉁명스럽게 표현하고 뒤늦게 후회를 합니다. 자녀에게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이 크게 보이고, 부모에게는 일보다는 자녀가 크게 보여 서로의 사랑은 매 순간 빗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보다 손주 보는 것이 더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휴대폰 속 가득 차 있는 손주 사진들을 서로 보여주며 자랑하기에 바쁜 복지관 할머니들에게는 한 번 자랑할 때마다 커피 한잔 사기로 규칙을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랑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우리 손주는 어찌나 밥을 잘 먹는지 보세요. 우리 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했어요. 배냇짓 하는 것 좀 보세요.” 크게 별다른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일까요? 가족이라는 연대감 안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 어르신들에게는 큰 위로를 주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거리상의 이유로 자주 손주와 만날 수 없다면 전화로라도 자주 소통하면서 ‘너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표현해 주고 그렇게 마음의 든든한 지지자가 가족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면 좋겠습니다. 비록 지금 내 눈앞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녹녹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힘들 때면 언제든지 돌아가서 쉴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우리 조부모의 품속이기를 바랍니다.



서울특별시 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박진리(베리타스) 수녀

[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 생활](8)조부모의 보살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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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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