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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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어머니

황재모 신부(안동교구 신기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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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관 뒷마당에 개 두 마리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우리 본당 교우들은 이놈들을 초복이, 중복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놈들은 이름에 걸맞게 올 여름을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역시 개나 사람이나 이름을 잘 지어야 하는 모양이다. 물론 나도 ○○탕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키우던 개를 후루룩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찜찜하다. 그런데 사제관에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는 "아냐, 이런 개가 더 맛있어"라고 하신다. 참 어이가 없다. 당신이 매일매일 밥 챙겨주고 예뻐하셨던 놈들이었는데 말이다.
 얼마 후 사제관에 `소망이`라는 작은 똥개를 한 마리 분양받아 또 키우게 됐다. 그런데 이놈은 워낙에 덩치가 작은 종자라서 아무래도 후루룩 하는 용도는 아니다. 요즘 어머니는 소망이와 하루 종일 대화를 하신다. 욕을 하면서 야단을 치기도 하고 귀여움을 떠는 개가 예뻐서 혼자 막 웃기도 하신다. 밥을 줄 때는 어린 아이 달래듯이 타이르면서 밥을 주신다.
 한번은 주방에서 어머니가 "밥 줄까?"하고 물으신다. 그래서 "응, 밥 줘"하고 대답을 하고는 한참을 기다려도 밥 먹자는 말씀을 하지 않아 주방으로 가 보니, 아까 했던 소리는 나한테 한 것이 아니라 소망이에게 하신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돌아와 혼자 웃기만 했다.
 어머니께서 큰 장을 볼 때는 내 차를 이용해 시내 대형마트로 함께 가곤 하는데, 그럴 때 어머니는 사야할 품목을 미리 메모해 가신다. 메모라고 해봐야 평화신문 귀퉁이를 찢어 거기에다 삐뚤삐뚤한 필체로 대충 쓰신 것인데 내용은 대충 이렇다. `계랄(계란), 봉봉(퐁퐁), 요구로도(요쿠르트), 도마도(토마토)…` 얼마나 우스운지 모른다.
 비가 시원하게 내리던 어느 날, 턱을 괴고 비오는 창밖을 한참 동안 내다보시는 어머니를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이 열댓 살 밖에 안된 사춘기 소녀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더 놀라웠다.
 첫 본당으로 발령받아 갔을 때에도 함께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참 많이도 다퉜다. 아니 일방적으로 내가 짜증을 많이 부린 것이다. 아들을 너무 과하게 걱정하고, 이미 성인이 된 아들에게 자꾸만 잔소리를 하시는 것 같아 짜증을 부렸던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4남 4녀를 키우시면서 힘겨웠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지만 하루도 기도를 소홀히 한 적 없이 평생 신앙인으로서 의연함을 지켜온 분이 나의 어머니시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요즘은 과거 어느 때보다 모자지간에 사랑의 관계가 무르익고 있다. 사십대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내가 조금씩 철이 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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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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