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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뼈대있는 가문

황재모 신부(안동교구 신기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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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서북단에 위치한 문경은 높고 험준한 소백산맥을 경계로 충북 괴산군ㆍ단양군과 인접해 있는데, 옛날에는 영남지방에서 서울과 충청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관문(문경새재)이었다. 그래서 최양업 신부님이나 칼래 신부님의 사목경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으로, 박해시대에는 많은 신앙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문경새재를 넘어와 여기저기 함께 모여 살던 교우촌(한실, 여우목, 건학, 마원 등)이 많은 곳이다.
 나의 고향 문경시 공평동은 이러한 교우촌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를 하고 있는데, 작고하신 집안 어른들 증언을 종합해보면 `공평 마을`은 1890년대에 이미 교우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공소 역할을 할 정도로 신앙의 뿌리가 깊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2년 드디어 안동교구에서 처음으로 본당이 설립되는데, 그 본당이 바로 우리 마을 공평본당이다. 그 후 도시개발 영향으로 현재 점촌동본당 자리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점촌본당이 됐고, 지금 내가 사목하고 있는 신기동본당도 1965년에 점촌본당에서 분가했다.
 내 고향 공평마을은 평해 황(黃)씨 집성촌으로 마을에 살고 있는 분들 중 평해 황씨가 아닌 분들은 며느리들 뿐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두가 친척이고 모두가 신앙인인 그런 마을이다. 이렇게 신앙적으로 유서 깊은 마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황씨 가문에 사제 하나 만드는 게 큰 바람이었다고 어릴 적부터 들어왔다. 100년 이상 신앙 역사를 지닌 마을에서 어쩌면 당연한 바람이 아니었겠나 생각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신학교 문을 두드렸는데, 어느 한 사람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 어떤 분은 건강이 여의치 못해 중도에 포기하고, 또 어떤 분은 사고로 돌아가시고, 또 어떤 분은 학업이 뒤쳐져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신학교에 들어가게 돼 늦게나마 마을에 사제가 하나 난 셈이다. 내가 사제품을 받고 첫미사를 집전할 때 마을 어른들 모두가 참 기뻐하셨던 것 같다.
 신학생 시절에는 뼈대(?) 있는 우리 가문에서 은근히 전해오는 무언의 부담감이 적잖은 스트레스를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마을 어른 모두가 드러나지 않는 기도와 관심의 후원자들이시기 때문이다. 뼈대 있는 신앙인 가문에서 태어나 사제생활 착실히 잘해 성인신부 되라는 무언의 부담감을 `기쁜 멍에`로 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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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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