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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쌀국수 두 그릇 주세요

박문자 수녀(진안인보다문화가정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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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십중팔구 이주여성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익숙한 문화와 환경을 떠나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결혼을 선택해 두려움과 외로움을 가슴에 묻은 채 남편 한 사람 믿고 살아가는 용감한 여성들이다.
 언어를 익히기도 전에 벌써 아이가 태어나 어느 시점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같은 수준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학교에 다닐 즈음해서는 아이가 여러 가지로 자꾸 물어온다. 이럴 때 "몰라, 아빠한테 가서 물어봐"라고 했다간 `왕따`를 당하기도 하는 게 이들이다.
 친정도 도와주고 싶고 자신 역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부푼 꿈은 농촌이라는 현실과 세대 차이 나는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해 여지없이 깨지고 실망과 공허함의 날들이 반복 또 반복된다.
 왜 한국으로 시집왔어요? 하고 물으면, TV에서 보니 남자들도 멋있고 집안살림도 예쁘고, 경치도 아름답고 해서 왔는데 속았다나?
 매일 술에 취해 있는 남편이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아이를 등에 업고서라도 억척스럽게 농사일을 거드는, 젊다못해 아직 어린(?) 스물두살 투이를 보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투이는 스무 살에 마흔두 살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이다.
 우리 센터에서는 이주여성 건강관리를 위해 의원 몇 군데와 연결해 무료진료 도움을 주고 있는데 그날은 산부인과에 가는 날이었다. 투이도 첫 아이를 낳은 지 일년이 되어 가기에 함께 검진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헌데 웬 변신! 등에 업고 다니던 아기는 남편에게 맡긴 채 짙은 화장에 귀걸이, 목걸이, 팔찌등 온갖 액세서리로 예쁘게 꾸미고 완전 나들이 차림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얼마나 멋을 내고 놀러다니고 싶었을까? 한창 나이에….
 그래, 오늘은 병원에 갔다가 시내 구경도 시켜주면서 멋진 투이의 아름다움을 한껏 날리게 해줘야지! 어머 그런데 이게 웬일? 진료를 마치고 나온 투이의 말, "선생님, 어떻게 해, 나 임신!"
 8주가 되도록 임신인 줄도 모르고 겁없이 들에 나가 일에 여념이 없던 투이와 남편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맛있게 먹던 한국 음식을 어느날부턴가 시큰둥해하며 먹질 않더니만….
 `아니, 애가 임신한 것도 모르고 무슨 남편이 그래!` 딸 가진 엄마의 사위에 대한 서운함이 이런 걸까? 화려한 외출 계획은 무산되고, 나는 투이의 온 몸을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베트남 음식점으로 향했다.
 "여기 쌀국수 두 그릇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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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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