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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나그네 설움

박문자 수녀(진안인보다문화가족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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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녀님, 순재네 집에 좀 빨리가 주세요. 순재 와이프가 시어머니하고 싸움이 붙어 난리가 났어요."
 옆 동네 사는 미엔 남편이 숨넘어 갈 듯이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해왔다.
 처음 맞는 긴급출동이다. 단숨에 30여 분을 달려 집에 도착해 보니 싸움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 싶었다. 화가 잔뜩 난 모습의 시어머니를 뒤로 하고 지쳐 쓰러져 있는 자우(순재 아내)를 보려고 방에 들어간 순간 너무 놀라 당황했다. 눈동자는 겁에 질려 옆으로 돌아갔고, 온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순재씨는 이런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눈만 껌벅거리며 멋쩍게 서 있었다.
 시집온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한국말을 거의 모르는 자우는 "시어(싫어), 무서워"라는 말만 계속할 뿐, 다가가 안아주려 해도 토끼마냥 웅크리고 앉아 흐느껴 울기만 했다. 시어머니가 말하는 사연은 이러했다. 시골에서 반찬이 다 그렇잖수! 김치, 총각무, 푸성귀, 된장….
 그런데 자우는 한국생활 적응이라는 스트레스에 입이 다 부르터 먹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매운 고춧가루는 더욱 힘들었다. 자우는 시어머니 식사 준비를 거들다 김치찌개를 보며 입이 아파 안 먹는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김치가 싫다는 줄 알고 "한국에 왔으면 김치를 먹어야지. 아니면 먹을 게 뭐가 있어! 안 먹으려면 저리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우는 갑자기 슬퍼졌다. 먼 이국 땅에서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데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시어머니의 "저리가!" 라는 말을 집을 나가라는 말로 알아들은 자우는 북받치는 서글픔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네 말로 소리를 질러댔고, 시어머니 또 당신대로 이러쿵저러쿵 집이 떠나도록 서로 소리를 질러댔으니….
 아-, 이 난국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우선 시어머니의 얘기를 다 들어주고 안정을 시킨 다음 자우를 데리고 바람 좀 쐬고 올테니 허락해 달라고 했다. 한국어가 조금 유창한(?) 이웃마을 투엔을 만나 속시원히 얘기도 하게 하고 시어머니에 대한 오해도 풀어주고 싶었다.
 아이들을 낳고 이미 한국 며느리가 다 된 투엔은 자우를 참으로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많이 힘들지? 한국 시어머니 말은 무서운데 실은 아니야. 나도 처음엔 무서웠어.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 다 이해해."
 두려움에 긴장됐던 자우 얼굴에 어느덧 웃음이 깃들며 투엔의 아들을 사랑스레 어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투엔의 말."빨리 임신해 아기 낳아! 그래야 한국 사람이지."
 자기 민족끼리도 소통이 어려워 겪는 고부간 갈등인데 오죽할까? 그래도 그리운 고국을 떠나 환경과 문화가 다른 우리와 가족이 됐으니 몇 배, 아니 몇십 배 더 이해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것이 나그네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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