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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69) 오늘 복음에도 내가 나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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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 성직 형제들은 일주일씩 전례 봉사를 합니다. 그런데 미사 주례 주간이 되면 강론 때문에 신경이 아주 많이 쓰입니다.

‘아니, 사제가 강론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 어떤 신경이 쓰이냐?’는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수도원에서 새벽에 일어나 형제들 모두가 공동으로 아침 기도를 바치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하루를 마칠 때까지 형제들이 한 공간 안에서 살기 때문에, 서로의 삶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형제들 앞에서 강론을 한다는 것은 긴장되는 일입니다. 특히 수도생활 50년, 60년을 하신 원로 수사님들 앞에서 사제라는 이유로 강론을 하게 되면…, ‘잘해야 본전’.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 금요일 날 저녁, 공동방에 물을 마시러 가는데, 총원장 신부님과 수도원 복도에서 마주쳤습니다. 총원장 신부님은 반가운 표정으로 내게 다음 날 미사 주례를 부탁하셨습니다. 주간 전례를 맡은 신부님이 집안에 아주 급한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게 돼, 당장 미사 주례자를 찾고 있는데 내가 보이더랍니다. 나는 속으로, ‘아, 물 마시러 나오지 말 걸!’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총원장 신부님의 부탁이라 ‘예’하고 방에 들어와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다음 날 토요일 미사 강론을 준비했습니다.

토요일, 기상과 함께 씻고 성당에 가서 아침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제의방에 들어가려는데, 옆자리에 앉은 신부님이 내게 속삭이며 말하기를,

“오늘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하는데 알고 있어?”

‘엥…, 성모신심미사를! 그럼 복음이 바뀌는 거네. 헐, 나는 평범한 토요일 미사의 복음 강론을 준비했는데…. 아이고, 망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신부님에게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인 후, 제의방으로 들어와 그 좁은 제의방을 왔다갔다 하면서 ‘이를 어쩌지…’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당으로 나와 감실 앞을 바라보며, ‘주님, 이를 어쩌죠?’, 그리고 성모님을 보면서 ‘성모님, 이를 어쩌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성모님께서 내 마음의 귀에다 속삭이듯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요셉아, 네가 준비한 복음 내용에 내가 나온단다. 걱정하지 말아라.’

혜성처럼 번뜩이는 이 울림에 오늘 복음을 다시 읽어보니, ‘카나의 혼인잔치’ 내용이었고, 실제로 성모님께서 등장했습니다. 나는 급히 강론을 준비하면서, 혼인잔치에 술이 떨어진 것과 수도 생활 안에서 기쁨이 바닥 나는 내적인 요인을 묵상한 후 강론으로 준비했기에, 성모님께서 나온다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성모님이 진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제님과 상의한 후, 성모신심미사 중 복음만 오늘 복음을 읽어 달라고 부탁을 했고, 강론을 시작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형제들도 다들 웃으며 양해를 해 주었습니다. ‘휴…, 다행이다.’

그날, 나는 성모신심미사를 잘 봉헌한 후, 하루 종일 성모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특히 다른 어느 나라에 발현하신 성모님의 모습보다, 오늘 내가 봉헌한 미사의 복음에 나와 주신 성모님께 더더욱 큰 감사를 드렸습니다.


강석진 신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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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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