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배교·유배·증언’ 주제로 심포지엄 열어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한국교회사는 신앙의 모범이라는 측면에서 초기 신자들의 순교를 중심으로 쓰였다. 순교자 중심인 한국교회사에서 배교자와 회심자를 조명해, 이들의 배교 이유와 회심의 과정을 통해 박해 시기 상황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오늘날 신앙생활을 쉬거나 신앙을 떠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목활동에 해답을 찾으려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총원장 전진욱 신부)는 5월 18일 서울 성북동 수도회 본원 복자회관 성당에서 ‘배교·유배·증언’을 주제로 순교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내포교회사연구소 방상근 박사와 한국학중앙연구원 심재우 교수, 순교성지 새남터본당 주임 강석진 신부가 각각 ‘박해시기 천주교회의 배교자와 회심자’와 ‘1801년 천주교인 유배 조치의 양상과 유배인의 삶’, ‘밀고자 피영록 바오로의 생애’를 주제로 발제했다.

방상근 박사는 제1발제에서 박해시대의 배교자와 회심자의 회심 과정, 회심자에 대한 교회의 조치 등을 설명했다.

방 박사는 “한국교회는 여러 차례의 박해와 교회의 재건을 반복하는 가운데 유지되고 발전되어 왔다”면서 “비록 박해로 인해 배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배교자들도 박해 전까지는 한국교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었다”고 평가했다.

심재우 교수는 「사학징의」에 등장하는 유배인 226명의 유배지, 유배형태, 유배지의 삶을 개괄적으로 살펴봤다.

심 교수는 “천주교인 유배인들의 경우 유배지에서 이들이 천주교를 전파하지 못하도록 다른 유배인보다 훨씩 엄격하게 감시·관리됐다”면서 “당시 신자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매우 심했음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강석진 신부는 다블뤼 주교를 모셨고, 브르트니에르 신부와도 함께 생활했지만 병인박해 당시 배교해 밀교자로 활동했던 피영록 바오로의 삶을 조명했다. 1867년 혹은 1868년 체포된 피영록은 3년 동안 밀고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신자들을 고발했지만, 1883~1884년 회심한 뒤 교회로 돌아왔다.

강 신부는 “교회는 박해시기를 말할 때 신앙과 배교의 관점, 순교자와 밀고자에 대한 판단 등 ‘선과 악’의 이분법적 역사 인식을 갖고 이해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면서 “신자들 역시 박해 시기와 그 시기를 살았던 신앙 선조들에 대한 총괄적인 이해를 통해 교회사를 통합적인 안목에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9-05-2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7

유딧 8장 25절
모든 것이 그러하더라도 주 우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