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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31. 남자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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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에서 의료사고로 뇌사상태가 된 아내를 극진히 간호하여 8년 만에 깨어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2000년 남편 장위화씨는 식물인간이 된 아내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내를 집으로 데려와 그녀가 좋아하던 노래 ‘내 마음 속의 연인’을 부르며 지극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렇게 간호하기를 6년. 마침내 장씨는 자신이 노래를 부를 때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2년 뒤 장씨는 아내가 뭔가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내가 마침내 8년간의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2008년 장씨의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의사들은 한결같이 아기를 낳으면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이 죽어있던 자신을 다시 살려주었기에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남편을 위해 자신은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건강한 딸을 출산했고 다행히 산모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장씨는 매일 아내에게 ‘내 마음 속의 연인’을 불러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장씨 혼자 부르지 않고 이젠 세 식구가 함께 부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합니다.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자녀를 낳아주고 교육시킵니다. 남편은 머리이고 아내는 몸이며 자녀는 그 열매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마치 이런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같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으로서 교회에 당신 생명인 살과 피를 내어주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새로운 자녀를 탄생시킵니다.(에페 5,21-33 참조)

그런데 이런 남녀 간의 혼인관계의 원 모델은 하느님의 삼위일체 관계입니다. 아내의 머리가 남편이듯, 그리스도의 머리는 아버지이십니다.(1코린 11,3 참조) 장위화씨가 아내를 8년 동안 극진히 간호한 것이 남편이 아내에게 주어야 하는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는 아드님께 ‘성령’을 아낌없이 부어주십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생명입니다. 장씨의 아내가 그 보답으로 자녀를 낳아주었듯, 아드님은 성령을 주시는 아버지께 교회를 탄생시켜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하와를 탄생시키기 위해 아담의 ‘갈비뼈’가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죽음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은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빼내셨습니다. 이 ‘피와 물’이 바로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사인데, 교회는 이 성사라는 갈비뼈로 탄생된 하느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766항 참조)

장위화씨는 아내를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아내도 남편에게 보답하기 위해 갈비뼈를 빼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어야했습니다. 그렇게 자녀가 탄생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아드님께 성령을 내려주시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드님께 옆구리가 뚫리는 고통을 요구하셨습니다. 아드님은 아버지께 감사하여 기꺼이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교회라는 자녀를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창세 1,27 참조) 남자건 여자건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남녀는 높낮이가 없이 하느님과 같은 존귀한 가치를 지닙니다. 남자도 여자를 하느님의 모습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여자도 남자 안에서 존엄한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야합니다.(369항 참조)

그런데 특별히 남자는 하느님 아버지를 그 모델로 삼아야하고, 여자는 그리스도를 닮으려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성령을 내려주셨듯이 남편은 아내를 위해 생명을 바쳐야하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낳아 아버지께 봉헌하셨듯이 아내는 자녀를 낳아 올바른 교육을 시켜야합니다.

장위화씨의 사랑이 없었다면 아내가 다시 깨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셨으면 아드님도 존재하실 수가 없습니다. 물론 장위화씨도 아내가 없었다면 자녀를 가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도 아드님이 아니면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교회를 만나실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아드님이 성령 안에서 하나이듯,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위한 존재’요,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이며, ‘서로를 위한 도움’인 것입니다.(372항 참조)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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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7-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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