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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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504) 찰고와 은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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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동창 신부님 만나 수다를 떨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동창 신부님의 본당에서는 몇 개월 동안 예비신자 교리반을 운영했고, 영세식을 앞두고 찰고 날짜와 시간을 정했답니다. 찰고 장소는 주임 신부 집무실이 아니라, 소성당이었답니다. 그리고 찰고하는 날, 저녁 7시가 되어 예비신자분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답니다. 기도문을 외우고 있는 분, 칠성사에 대해 공부하는 분, 그냥 설레고 떨리는 분들…. 아무튼 그 분위기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했답니다.

이윽고 7시10분 정도가 되자, 세례받을 예비신자분들이 거의 다 모였고, 동창 신부님은 신자들에게 정말이지 우스갯소리로,

“우리 본당 보좌 신부님이 너무 성실하게 잘 살아서 평소 나무랄 데가 없는데, 이제 여러분들 찰고를 한 후, 탈락자가 생기면 보좌 신부님의 종아리를 좀 쳐야겠습니다. 다들 준비들 다 되셨죠?”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는데, 주임 신부라는 사람이 자신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준 보좌 신부님의 종아리를 치겠다고 했으니! 예비신자 분들의 얼굴 표정은 어두워지고 심각해지더랍니다. 그리고 찰고하는 장소에는 본당 소성당의 제대 앞부분에 작은 책상과 의자 두 개를 놓고, 가운데 초를 켜 놓았답니다. 그래서 잔잔한 엄숙함까지 곁들였답니다.

이윽고 찰고는 시작됐고, 동창 신부는 미리 의자에 앉아 있었답니다. 예비신자분들 한 분, 한 분 소성당 문을 조용히 열고, 제대 앞으로 걸어왔습니다. 사실, 동창 신부는 소성당에서 찰고하는 분위기에 대해 예비신자들이 어려워하면 어떡하나 생각했지만, 오히려 찰고 장소에 대한 반응은 좋았답니다. 예비신자 몇 분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성당, 주임 신부님이 제대 앞에서 책상에 초를 켜 놓고 자신들을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지금까지 기다리시는 것 같아 눈물이 나고, 가슴도 쿵- 쿵- 뛰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찰고가 시작되는 동안, 어떤 60대 자매님은 기도문을 외우다가 그만 막혔답니다. 그래서 주임 신부는 가만히 자매님 얼굴을 보며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는데, 순간 그분이 눈물을 흘리면서

“신부님, 제가 기도문 다 못 외워서, 보좌 신부님 종아리 맞는 거 아니죠? 정말 맞는 거 아니죠?”

오히려 동창 신부는 두 손, 두 발로 빌면서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 후, ‘자매님, 충분히 기도문 잘 외우셨고, 앞으로 신앙생활 충실히 하면 다른 기도문은 저절로 다 외워질 것’이라 달래며 말했답니다. 정말 식겁했답니다. 이제 곧 영세를 앞둔 예비신자 분들은 마음이 정말이지, 천진난만한 어린이 마음 같았답니다.

그렇게 찰고는 하는데, 어느 형제님이 들어오더니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신부님, 저는 요즘 신기하게도 미사가 너무 짧게 느껴집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인가 싶어, 동창 신부가 묻자, 그 형제님은,

“사실, 제가 처음으로 미사 본 날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사가 얼마나…. 이 말을 해도 될는지요?”

‘잊을 수 없는 미사’라 무슨 뜻일까 궁금해진 신부님은 편안하게 다 말해도 된다며 격려를 했더니, 이렇게 말했답니다.

“제가 처음으로 미사 본 날은 미사가 정말 너무나 길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찌나 지겹고, 시간도 안가고. 무슨 이런 것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세례받을 날이 가까워지니, 미사가 점점 짧아지고, 미사가 재미있다는 표현은 잘못된 건지 모르지만, 처음에 미사는 억지로 따라하고 끌려만 가는 것 같아서 재미없었는데, 이제는 재미있어요. 그래서 세례를 받으면 미사에도 재미있게 참례할 것 같아요.”

동창 신부님은 찰고한 후, 예비신자들의 순수한 모습이 변하지 않기를 주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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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9-3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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