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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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도시 광야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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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색 촛불을 하나 더 밝히며 대림 제2주일을 맞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정의와 공정으로 다스리는 메시아의 시대가 다가옴을 예고합니다. 시대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메시아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는 이 은혜로운 시기에 굽은 길을 곧게 펴는 마음으로 회심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과 사회교리주간으로 지냅니다. 오늘날 물질문명과 돈 중심의 사회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사회 경제 질서는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듭니다. 인간을 존중하고 정의를 실천하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새 복음화’의 길은 사회교리의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죄에 대하여 개인의 책임(‘내 탓이오!’)을 강조해왔으나 최근 구조적인 불의로 공동선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시대마다 도전적인 사회 이슈가 제기될 때 역대 교황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선포해왔습니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바티칸의 대표적 사회교리 문헌인 (1891), (1931), (1961), (1963), (1967), (1995), (2013) 등은 사랑과 정의의 열매를 맺어 평화를 이루는 생명의 길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이사 11,1-10)에서 이사야 예언자(기원전 8세기)는 다윗 왕권의 이상을 구현할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예루살렘 출신 다윗은 필리스티아인과 전쟁에서 골리앗을 이긴 영웅(1사무엘 17,12 이하)이고, 40년간 통일왕국(1역대 29,27)을 다스린 통치자였으며, 시편에서 보듯이 수금 실력이 뛰어나 성전의 거룩한 전례를 세운 왕의 모델입니다.

오시는 ‘새 다윗’(이사 11,1)은 성령 칠은을 입어 주관대로 판단하지 않는 정의와 신의의 심판자입니다. 늑대, 표범, 사자 같은 야생동물이 염소, 양, 소 같은 가축과 함께 지내고, 어린이가 독사굴에 손을 디밀어도 물지 않는 세상은 천국의 목가적인 모습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메시아의 시대는 보편적인 정의와 평화가 꽃피는 세상(화답송, 시편 72)이라는 극적 묘사입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을 알고 모여든 성전은 주님께 영광입니다.

제2독서(로마 15,4-9)에서 바오로 사도는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됨을 밝힙니다. 주님의 뜻에 일치하여 한마음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함은 경직된 사고와 획일적인 표현이기보다는 타인의 생각과 의견도 배려하여 조화를 이룸에 있습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인 사랑의 일치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하느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만민에게 은총의 선물이 되어 그들도 주님을 모시고 기쁘게 찬미하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예언자가 말한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이사 40,3; 말라3,1)이 유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태 3,2-3)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광야는 고적한 불모지입니다. 반면에 별이 빛나는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늘(하느님)나라는 하느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는 유다 관습에 비추어 나자렛에 오신 메시아(마태 2,23)이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사는 길은 회개와 쇄신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회개는 잘못을 고백하고 성사를 보는 예식보다는 하느님을 부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나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내적 참회가 핵심입니다.

스마트 시대에 주님이 오실 길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 드러낸 교만과 분노의 산과 언덕은 낮추고, 분열과 절망의 골짜기는 메우며, 얽히고설킨 매듭을 풀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마태 3,3; 이사 40,3-5)을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요한은 말로만 회개를 외친 것이 아닙니다. 낙타털옷과 가죽 띠를 두른 그의 복장과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지내는 광야의 삶이 표양입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강물로 세례를 받는 백성들 가운데 율법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에게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란 모욕적인 언사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질책(마태 3,7-8)합니다. 당시 사회의 갈라진 모습, 지도자들의 위선,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이 짐작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지 못한 나무는 ‘다가올 진노’에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집니다. ‘다가올 진노’(마태 3,7)는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는 이에 대한 심판을 두고 한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선민의식은 버리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새 삶에 도전합니다. 오시는 주님은 요한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으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며, 심판의 타작마당에서 알곡은 곳간에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산타가 되어 가난한 이웃들에게 자선의 선물을 나누는 전통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내면의 하느님을 만나 우정을 나누는 사랑받는 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끄러운 삶을 회심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신앙인이 요한의 모습을 닮은 도시 광야의 선구자가 아닐는지요? 대림 촛불 앞에서 내면을 살피고, 감사할 줄 모르고 나 중심의 삶을 산 잘못을 참회하면서 마음에 오시는 주님을 따뜻이 맞을 빈방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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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2-03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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