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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담아 사제 밥상 차리는 주님의 식복사

[기획 특집] 세계 여성의 날에 만난 교회 내 여성 노동자 ②심금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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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식복사로 일해온 심금수씨. 그는 “신부님 밥 해드린 일이 내 생애 가장 기쁜 일”이라고 했다.

밥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한다. 살림 경력 30년차 주부에게 한 끼 밥상을 차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밥을 먹는 사람은 밥을 차려내는 사람의 수고로움을 잘 알기 어렵다. 밥을 차리는 사람은 누군가의 고픈 배가 채워지는 것만으로 이미 배가 부르다. 그것이 밥을 차리는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면 보상이다. 세계 여성의 날(3/8)을 맞아 두 번째 교회 내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

아들·딸을 사제와 수녀로 키우는 게 꿈이었다. 딸은 일찌감치 다른 길을 걸었지만, 아들은 고3 때까지 사제의 꿈을 꿨다.

“아들이 고3 여름방학 때 성적표를 갖고 와서 신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순간, 화가 너무 많이 났죠.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사제의 길을 꿈꿔왔거든요. 아들에게 말했죠. ‘엄마는 아들을 신부로 키워서 아들 신부 밥 해주는 게 목표였는데…. 엄마는 이제 신부님 밥해주러 다닌다!’라고요.”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30년 경력 주부 심금수(가타리나, 59)씨는 그렇게 처음 세상 밖 일터로 나왔다. “신부님 눈도 못 마주쳤어요. 세상 밖에 나와서 처음 한 일이었거든요. 세상에 나와보니, 자존감도 없고 은행 일도 못 보는 거예요. 그야말로 그냥 주부로만 살았던 거죠.”

그는 수없이 많은 밥상을 차려봤지만, 식복사로 일하며 “잘 먹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어머, 세상에 ‘잘 먹었다’는 인사를 듣다니…. 한 달이 지나니 월급이 나와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이게 천직이다 싶었어요. 남편에게 30년 동안 밥을 해줘도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웃음)”

심씨는 경북 왜관에서도 더 들어가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요리 솜씨는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는 산골에서 파와 양파·감자·마늘만으로도 요리를 참 잘하셨어요. 약으로도 못 고치는 속병은 음식으로 고칠 수 있다고 하셨죠.”
 
그가 메모해 놓은 식단. 그는 식단 고민에 새벽까지 잠 못들 때도 있다.

2013년에 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손님 신부를 포함한 사제 6명의 밥을 책임져왔다. 위가 좋지 않은 신부를 위해서는 6개월 동안 무 요리를 집중적으로 하고, 전립선이 안 좋은 신부를 위해선 토마토를 음식재료로 썼다. “무가 들어간 요리가 얼마나 많아요. 무밥, 오징어무국, 무생채, 명태 뭇국, 황태 뭇국…. 전부 무가 들어가죠. 신부님들 위병이 나면 능이 뭇국을 끓이죠.”

경북 문경에 사는 친언니와 동생이 수시로 제철 나물과 버섯을 보내준다. 언니와 형부·동생과 제부가 보내주는 향 내음 가득한 냉이·두릅·엄나무 순·능이버섯 등으로 밥상을 차린다. 각지에 사는 심씨 가족 모두가 함께 ‘사제의 식탁’을 차리는 셈이다. 그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오전 11시 55분. 그의 손을 거친 음식재료들이 그릇에 담겨 사제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직전이다.

그는 9시 30분에 출근해 7시 30분에 퇴근한다. 사제관 부엌에서 점심ㆍ저녁상을 차리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은 후에 일을 마무리한다. “식복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음식을 하고 나서 잘 안 드시면 어떡하나 하는 압박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제가 정성을 다해 요리했을 때는 잘 드시든 안 드시든 제 소관은 아니더라고요.”

식사를 거르겠다는 신부의 문자를 받으면, 사제관에서 홀로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몇 번을 확인한다. 식사를 거르겠다고 연락을 받고 퇴근할 때 흰죽을 끓여서 갔더니 혼자서 끙끙 앓는 신부가 있었던 탓이다.
 
심금수씨는 2015년부터 틈틈이 일기를 써왔다. 식복사로서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2015년부터 일기를 썼다. 그날의 식단과 기분을 적는다. 사제관을 방문한 손님들과의 일화도 쓴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터에서 남기는 쉼표 같은 기록이자, 앞으로는 추억이 될 조각이다. 올해는 성경 필사도 시작했다.

“이 부엌이라는 공간은 제게 기도 그 자체예요. 나물을 다듬다가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어요.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지 몰라요. 적당한 노동은 감사한 일입니다. 사람이 행복한 일을 하는데 안 행복할 수가 있나요? 저는 신부님들을 존경하고,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할 뿐이에요.”
 
요리하는 사람의 직업병은 날카롭고 뜨거운 것에 베이고 데이는 일이다.

심씨는 “먼 훗날 예수님을 뵐 때, ‘세상에서 무엇을 제일 잘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당신 아들들 밥해 먹이는 일을 했다’고 할 것”이라며 “그것이 내 생애 가장 기쁘게 최선을 다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12년간 식복사로 일해온 그는 매년 한 달치 월급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기부해왔다. 몸이 아픈 이들을 눈여겨봤다가 기회가 되면 담근 김치와 반찬도 건넨다.

“제가 옷을 사 입기를 하나요, 화장을 하나요? 요리하는 탤런트를 받았으니 그걸 나누는 것뿐이에요.”

내년 5월이면 정년을 맞는 심씨는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시골에 집을 지을 때 게스트 하우스 같은 공간을 따로 만들고 싶어요. 몸이 아픈 이들이 편안하게 지내다 가실 수 있게요. 식탁에는 샐러드를 준비해놓고 호박잎도 쪄놓고요. 밥 먹으라고 깨우지도 않고요.(웃음)”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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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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