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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같은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시 찾은 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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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정숙씨가 팽목항 부두의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 벤치를 어루만지고 있다.

“추모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으로부터 빠르게 분리되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연결이 끊어지자 기억은 조용히 그 빛을 잃었다. 인적 드문 곳에 홀로 낡아 버린 재난참사의 위령탑들은 망각의 역사를 기념하는 조형물로 남았다.”(‘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 발간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 중에서)



빛바랜 노란 리본 곁을 지키는 가족들

10년 전, 안산시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이 사망·실종한 세월호 침몰 사고. 온 국민은 이를 ‘참사’라 부르며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애도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16일)를 앞두고 희생자들이 수습된 진도 팽목항(현 진도항)을 다시 찾았다.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외침은 녹슨 조형물과 빛바랜 노란 리본이 고요한 침묵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은 고요함에 그치진 않았다. 유가족과 함께 10년간 매일 팽목성당을 지킨 손인성(스테파노)·김영예(바울라)씨 부부의 노력으로 침묵의 땅은 기도로 채워졌다.

팽목항에서 만난 유가족 이정숙(리타)씨는 “다 끝났다고 얘기하지만, 우리 유가족은 늘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며 “기억해야 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는 큰 희생만큼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참사에 대한 자세를 달리하는 이정표가 됐다. 세월호 참사를 기폭제로 삼풍백화점 붕괴(1995)·씨랜드 화재(1999)·대구지하철 화재(2003)·가습기 살균제 사건(2011) 등 8개 참사 유가족들이 모인 ‘재난참사피해자연대’가 지난해 12월 발족돼 ‘안전사회 건설’을 한목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유가족은 곱지 않은 시선의 말과 글로 씻을 수 없는 상처도 받았다. 참사 피해자를 조롱하는 이들까지 생겨날 정도로 사회 분위기는 양분됐다.

유가족 윤옥희(데레사)씨는 “걷잡을 수 없는 오해와 따가운 시선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았고, 지금도 곁에서 힘이 돼주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여 명은 참사 10주기를 맞아 2월 25일부터 3월 16일까지 ‘안녕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제주도에서 출발해 팽목항과 목포·광주·부산·대구·세종·수원을 거쳐 서울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영화·출판 등 문화계도 참사를 재조명하며 추모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경기교육청은 올해 4월 한 달간 헌화와 전시를 통해 추모 기간으로 보내기로 하는 등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다시금 전국 각지에서 연대의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앞장서 유가족 아픔 함께한 한국 교회

유가족은 특히 가톨릭교회가 가장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주고 힘을 실어줬다고 했다. 이씨는 “10주기를 앞두고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님을 찾아뵀는데, 우리 상황을 샅샅이 다 알고 계셨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시기로 했다”며 “언제나 성직자·수도자를 비롯한 신자들이 우리 곁을 지켜주셨다”고 했다.

주교회의와 전국 교구, 수도회는 16일 전후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사와 행사를 개최하며 기억의 행진에 동참한다.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금호1가동 선교본당 주임)는 지난 3월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개최한 ‘세월호 참사 10주기 성찰 좌담회’에서 “교회의 역할은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 곁에 함께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변함없이 옆을 지키다 보면 함께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이 행사를 치러내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아픔이요 고통의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추모는 떠난 이와 연결을 유지하려는 힘이다. 그러므로 추모는 고요한 순간에조차 뜨겁다. 애통히 떠난 이를 그리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룰 때, 그 행렬은 새로운 길이 되었다.”(「520번의 금요일」 중에서)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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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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