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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인생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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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 시절, 1중대 1소대장으로 근무했습니다. 대대가 행군을 하면 대부분 우리 소대가 첨병 임무를 맡았지요. 즉, 대대의 선두에서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주간에는 지형지물을 보고 행군로를 정확하게 찾았지만, 야간에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지도를 보고 철저히 연구를 해도 갈림길에서는 헷갈릴 때가 많았습니다.

1984년 가을, 경기도 양평에서 포천군 이동면까지 약 120㎞를 걸어서 훈련을 가게 됐습니다. 훈련준비로 사전 답사는 엄두도 못 냈지요. 더욱이 출발은 저녁 식사 후인 야간이었습니다. 캄캄한 밤, 양평을 벗어나 청평을 향해 가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로 같은 소로에서 실수를 한 것이죠. 대대 전체가 역(逆) 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기소침해 있던 이때, “괜찮아. 이 소위! 힘내!”라는 대대장님의 격려 덕분에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비단 보병부대의 행군에만 길잡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항공부대도 편대비행을 할 때 선두기가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특히 현대전은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주로 야간작전을 실시합니다. 선두기의 잘잘못은 작전의 성패는 물론 생사를 가름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만약 항로를 벗어나면 아군이 쏜 포에 맞아 추락할 수도 있고, 정확한 시각에 도착하지 못하면 편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소대장 시절의 실수나 편대비행을 생각할 때마다 토빗기에 등장하는 라파엘 천사가 오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을 했습니다. 라파엘 천사는 길을 잘 아는 사람으로 가장해 토빗의 집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토빗의 아들인 토비야가 동포에게 20년 전 맡겨 둔 돈을 찾으러 가는 길의 길잡이 역할을 수행합니다. 천사는 지인을 찾아가는 토비야의 길을 잘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도중에 닥친 곤경을 극복하도록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삶은 불확실성의 연속으로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인생이란 곧 별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밤을 걷는 것과 비슷하지요. 수시로 마주하는 삶의 기로에서 ‘이쪽으로 가야 하나, 저쪽으로 가야 하나’ 고민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직업을 선택하며, 평생 동반자를 정하며, 심지어는 하찮은 작은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망설이고 또 망설입니다.

그 캄캄한 인생의 밤을 환하게 밝혀 주는 것이 바로 신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요한 12,35-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며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올 한 해에도 삶의 기로에서 실수하더라도 “괜찮다! 용기를 내거라”라고 용서해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
동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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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0-01-2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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