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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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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성소국 "신앙의 해" 신앙체험수기 최우수상 수상작 <상>

고통 한 가운데서 만난 임마누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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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숙씨의 오빠(왼쪽 세 번째)와 어머니(왼쪽 두 번째)를 비롯한 이씨 가족이 집에서 함께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얼마나 큰 기쁨을 맛보며 살까요? 우리는 기쁨도 경험하지만 고통도 많이 겪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고통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된 기쁨이 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 또한 어려움이 더하면 더할수록 주님과 가까워지는 신비를 맛보았습니다. 제 신앙의 성장을 도와준 저희 오빠와 엄마를 통해서 말이죠.

 저희 오빠는 문턱 높은 서울대를 나왔습니다. 학창시절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에서도 장학금을 받으며 수재(秀才)란 소리를 들으며 지냈습니다. 이후 행정고시를 2차까지 무난히 통과하면서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러브콜(?)도 받았었지요.

 그때 오빠와 저는 틈틈이 시각장애인선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를 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운 생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때 저희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도록 하시면서 일찍이 당신의 신비를 일깨워주고 계셨어요.

 오빠는 고 3때부터 신장이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혈액투석을 해야 했습니다. 급기야 오빠는 저희 엄마 신장을 이식받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저희는 하느님 안에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오빠를 보며 기쁨을 맛보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었는지…. 저희 식구에게는 더 큰 시련과 고난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모든 식구가 그분만을 바라보며 하루도 빠짐없이 미사 참례와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어느 날 새벽, 오빠가 그만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왼쪽 몸에는 마비까지 왔습니다.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오빠는 몸이 점점 더 나빠져 혼자 대소변을 해결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희 식구는 그럴수록 더욱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기쁨과 은총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찾으면 찾을수록 이상하게도 고통은 커져만 갔습니다. 날이 갈수록 오빠의 신장은 나빠졌고 오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쓰러졌습니다. 하루 4~5번씩 해야 하는 복막투석의 고통도 따랐습니다. 그 와중에도 오빠는 제 아이와 성당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무료로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중에는 예비신학생 모임을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래와 함께 오빠의 과외 시간을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챙겨주며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그러던 2009년 어느 날, 아이들과 과외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데 며칠 전 받았던 오빠의 검진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결과는 간암.

 정말이지 기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믿음과 신앙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얼마나 더한 믿음을 지녀야 당신 뜻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당신이 가신 길, 몇 번이고 넘어지신 그 길을 생각하며 또 한 번의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굳은 믿음으로 확신을 갖고 말입니다."

 이후 오빠는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 몇 번이고 실려갔습니다. 오빠는 수십 차례에 달하는 극한의 고통을 넘기며 7차례에 걸쳐 암시술과 수술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수술 후 오빠는 청력을 잃었습니다. 다섯 번째 수술 후에는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오빠는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과를 방문한 날, 의사 선생님께서는 `빛 감지가 안 되니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오던 저는 오빠의 말 한마디를 듣고 차를 계속 몰기 힘들 정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말은 지금도 제 귓가에 생생하게, 가슴 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감사한 분인 줄 아니? 나는 그분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감사드린다."

 그 순간 저는 `인간적인 것에서만 만족하고 살았구나. 눈이 있고 귀가 있어도 볼 줄 모르고 들을 줄 모르고 살았구나`란 것을 느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는 오빠를 보며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다니, 그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주님 은총이구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데 주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 내가 미리 걱정하고 있었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오빠와 함께 계시는데…. 나는 오빠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오빠는 이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하루 4시간 넘게 하는 오빠의 투석을 도왔고, 먹여주고 닦아주었습니다. 묵묵히 오빠 곁을 지키며 오빠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척척 들어주고 돌봐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성모 마리아를 떠올렸습니다. 한평생을 주님 위해 바치신 우리 엄마, 이제 예수님이 가신 길 함께 걸으시네.

이은숙(아녜스, 인천 주안3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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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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