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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조명혜 부부의 펜화성지순례] <23>평양교구 서포성당 메리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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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민족사의 비극 6ㆍ25전쟁이 멈춘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 성당과 함께 북녘에 세워졌던 평양교구와 함흥교구, 황해도지역 성당도 펜화 성지순례에 포함시켜 이번호부터 조명하고자 합니다.

 평양 외곽 서포(西浦)는 화전에서 비롯된 가난한 농촌이었습니다. 그런데 1927년 3월 평양지목구가 설정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초대 지목구장으로 부임한 번 주교는 교구 본부를 설치하고자 대지를 물색하던 중 서포에 주목합니다. 평양권역이 확장되면 서포가 그 안에 포함될 것이라고 내다본 번 주교는 서포에서 넓은 토지를 사들여 공사에 들어갑니다. 1929년 번 주교가 메리놀외방전교회 부총장에 선임돼 교구를 떠난 뒤에도 공사는 계속돼 1931년 3월 교구 본부가 완공됩니다. 그 옆에는 교구 본부 완공에 앞서 1930년 서포성당이 세워집니다. 그림에서 보면 왼쪽이 평양교구 본부였던 서포 메리놀센터이고, 오른쪽이 서포성당입니다. 당시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동포리로,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양시 형제산구역 서포일동으로 바뀌었습니다.

 평양역에서 북쪽 11.1㎞ 지점에 위치한 서포역 앞 언덕에 세워진 서포성당은 설립 당시만 해도 신자가 단 한 사람에 불과했으나 서포성당이 세워지면서 신자가 늘어나 1937년 당시 420명에 이를 정도로 공동체가 커집니다. 서포 메리놀센터는 1942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가 인수, 수도원 본원이 됐지만 1950년 5월 14일 수도원이 해산되면서 공산정권에 몰수됐고, 서포성당도 같이 몰수됐습니다. 전쟁 중 교구청 건물은 인민군 병원으로 쓰였으나 연합군 폭격으로 메리놀센터와 서포성당은 모두 소실됐습니다. 다만 메리놀센터만 현재 라틴어 초석 일부분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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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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