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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조명혜 부부의 펜화성지순례] 34. 평양교구 서포 메리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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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3월 평양지목구 설정 직후 초대 평양지목구장에 임명된 제임스 패트릭 번(1888~1950, 훗날 초대 주한 교황사절 주교) 신부는 관서의 중심도시 평양에 주교좌를 두고자 했다. 그러나 곧 부지 확보와 재정 문제에 부딪혔다.

 그래서 대신 확보한 부지가 `서포`다. 행정 구역명으로는 평남 대동군 임원면 동포리(현재 평양시 형제산구역 서포1동)다. 평양역에서 서북쪽으로 불과 11.1㎞밖에 떨어지지 않은 서포가 곧 평양에 포함될 것이라고 내다본 결과였다.

 1929년 번 신부가 메리놀외방전교회 부총장(정확히는 총장 부재 시 그 권한을 대행할 수 있는 제1 참사위원)에 선임돼 교구를 떠난 뒤에도 공사가 계속돼 1931년 3월 서포 메리놀센터가 완공되기에 이른다. 신설 지목구로서 교구 행정 체제를 갖추면서 이 새로운 선교지로 파견되는 선교사제들의 훈련과 사목에 필요한 건물을 신축하고 돌아간 번 신부의 안목은 이처럼 선구적이었다.

 서포 메리놀센터는 본채와 성당, 사제관 등 3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으며, 교구 본부 겸 수녀원 건물로 활용됐다. 반지하 지상 3층에 벽돌 조적조와 석조, 목조 트러스, 한식 청기와를 얹었다. 지금도 평양교구민들의 고향 같은 평양교구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그 옆에는 교구본부 완공에 1년 앞서 1930년에 세운 서포성당이 들어서 있다.

 서포 메리놀센터는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 미국 선교사제들이 추방되면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에 넘어가 수도원 본원이 된다. 당시 메리놀수녀회원으로 1932년에 시작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설립에 산파역을 맡았던 장정온(앙네다) 수녀는 제2대 평양지목구장인 존 에드워드 모리스(1889~1987, 한국이름 목이세) 몬시뇰에 의해 초대 원장에 임명되면서 성모수도회복으로 바꿔 입었다.

 해방 뒤 변함없이 수도원 건물로 쓰였으나 1950년 전쟁이 발발하기 한 달 열흘 전인 5월 14일 수도회가 해산되면서 공산정권에 몰수됐다. 전쟁 중에는 인민군 병원으로 쓰였다가 유엔군의 폭격으로 서포성당과 함께 소실돼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메리놀센터 부지엔 현재 라틴어가 쓰인 초석 일부분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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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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