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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편지] 이들보다 더 가져 부끄럽습니다

모잠비크(하) 천영수 신부(한국외방선교회 모잠비크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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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

 어머니 전상서.

 이곳 모잠비크는 오늘도 저 멀리 지평선에서 여명이 비추면 아낙네들의 고단한 삶이 시작됩니다.

 새벽 4시 반.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늘 그렇듯이 아낙네들이 물 한 동이를 길어가기 위해 몇 ㎞씩 걸어와 옹기종기 모여 자신의 순서를 기다립니다. 그들의 분주한 손길 속에 담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성당 공동우물 옆, 저의 방 창문을 넘어 들어옵니다.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서 몇 자 올립니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새벽이지만 한국은 한창 바쁜 낮시간대이겠군요. 그 만큼의 시차가 제가 생활하는 밤리칭가교구 마주네성당과 어머니가 계신 한국과의 까마득한 거리를 말해 주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참 멀리 와 있었네요. 오늘은 언어, 문화, 기후 모든 게 아직까지 생소한 이곳이 더욱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 본당 신자들이 성모성월을 맞아 성모 마리아상을 모시고 행렬하고 있다.
 

 # "제 이웃은 모두 가난합니다"

 하지만 당신 아들은 이 낯선 곳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으니 걱정은 마세요. 이제는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는 물론 현지어인 마쿠아어로도 미사를 곧잘 집전하고, 성사도 잘 거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소에서 미사가 끝나면 주민들과 둘러 앉아 이들 주식인 `씨마`도 손으로 툭툭 집어 뭉쳐가며 잘 먹고 있습니다. 씨마를 옥수수 가루로 만든 떡이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40도를 넘나드는 더위 탓에 하루에 몇 번이고 샤워를 할 수 있는 것도 그저 감사하게만 느껴집니다. 이 근방 주민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매일 물전쟁을 치르지만, 제가 사는 성당에는 우물이 있어 물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발전기를 이용해 하루 두 시간씩은 전기도 쓸 수 있습니다. 춘궁기에 상관없이 음식도 넉넉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이웃들, 제가 돌봐야 하는 이들은 오늘도 물 한 동이를 길기 위해 먼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특히 외딴 곳에 사는 주민들은 건기에 웅덩이마저 말라버리면 물통을 이고 하염없이 물을 찾아 다닙니다. 그리고 배가 고픈 나머지 배탈이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덜익은 망고를 따먹어야 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의 고단한 삶 앞에서 무언가 조금이라도 더 가진 저는 자꾸 부끄러워집니다. 또 이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마음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 더 나누고, 조금 더 함께 한다면 더 좋은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아프리카보다는 풍족한 한국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 욕심인가요? 그 욕심 때문에 창문 너머에서 물을 긷는 낯선 손길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오늘따라 더한가봅니다.
 

 
▲ 옥수수 가루로 `씨마`를 만들고 있는 여인들.
 

 # 주민들과 더 나누며 살 수 있기를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한 가지 청할 일이 생겼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조금이라도 더 올바르게 복음을 선포하고, 이들과 더욱 더 나누면서 살 수 있도록 저와 이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멀리서나마 저를 기억해주시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어머니께 글을 올리다보니 벌써 아침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네요.

 아쉽지만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작은 기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모잠비크에서 아들 마론 신부 올림.

후원계좌
국민은행: 512601-01-102007
예금주 (재)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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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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