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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편지] 그날 밤 하느님이 불록을 날라주셨다

아르헨티나 편-최무순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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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11년째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남쪽 파타고니아 추밧 지방에서 생활하다가 북쪽으로 올라가 포모사 지방에서 8년을 살았다. 포모사에 있는 라구나 예마(Laguna Yema)라는 시골에서의 삶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 지역은 열대성 건조기후라서 여름에는 기온이 섭씨 50도까지 치솟는다. 전기, 식수, 생필품, 교통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그야말로 불편을 무슨 장신구처럼 몸에 달고 살았다.

 특히 우기에는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갇혀 지내야 했다. 다른 도시로 모임을 다녀오다가 폭우에 고립돼 승합차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다. 진흙탕에서 미끄러져 손목이 부러졌는데, 마을이 고립돼 있다보니 3일 후에나 80km 떨어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주일에 비가 퍼부으면 공소에서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 빈민촌 여성들과 함께(왼쪽에서 세번 째 모자 쓴 사람이 필자).
 

 #우기엔 고립된 섬이나 다름없어
 지역 주민들은 인디오들과 크리오요(백인 혼혈)로 이뤄져 있는데 경제적, 정치적 권력은 모두 크리오요에게 집중돼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디오들은 산짐승을 잡거나 꿀이나 열매를 채취하고,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잇는다.
 
   그들이 만든 수공예품의 판로를 개척하고,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뛰어다니는 것은 그나마 발이 넓고 수완(?)이 좋은 선교사들 몫이다. 이 때문에 공동체 수녀님들과 나는 수공예품을 밖에 싣고 나가 행상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외출할 때면 그들의 짐은 우리 짐가방보다 늘 크고 무겁다.

 이곳 부모들은 도시에서는 쓸모없는 물건을 재활용하고 재창조해서 사용할 줄 아는 특별한 지혜를 갖고 있다. 플라스틱 상자에 바퀴를 달고 나무막대기 손잡이를 붙여 멋진 유모차를 만들고, 버려진 자동차 바퀴는 반으로 잘라 빨래통이나 화분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못쓰게 된 플라스틱 대야와 바가지, 양철깡통도 화분으로 사용한다. 한 쪽 다리가 부러진 플라스틱 의자도 각목으로 다리를 만들어 철사로 이어서 사용한다.

 가난 속에서도, 매일 힘겨운 삶의 투쟁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라구나 예마 사람들! 가난한 삶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고, 나름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가르쳐준 고마운 그들을 떠나 지금은 살타(Salta)라는 도시로 나와 살고 있다.

 살타에서의 도시빈민 사도직은 도시 상황에 따라 또다시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커다란 도전을 받기도 한다. 살타 빈민가는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볼리비아 이주민들과 산골에서 무작정 올라온 가정들로 이뤄져 있다. 여성들은 청소, 빨래, 다림질, 아이 돌보기 등 일을 해서 푼돈을 손에 쥔다. 남자들은 임금이 형편없는 일용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나마도 일자리가 많지 않아 집에서 노는 사람이 태반이다.

 얼마 전, 살타 빈민가에서 `아름다운 기적`을 체험했다.

 무허가 판자촌, 비닐천막에서 세 아이를 데리고 살던 젊은 미혼모는 아이가 불장난을 하다 천막을 태워버리는 바람에 오갈 곳이 없게 됐다. 우리는 몇 번 회의를 갖고 미혼모를 도울 방법을 찾다가 몰래 야간 공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무허가 판자촌은 경찰이 상주해서 감독하기에 낮에는 건축자재를 반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단 건너편 이웃집에 집짓는 재료를 쌓아두었다. 집짓는 재료라고 해봐야 시멘트 블록이 전부다. 겨우 비바람 피할 정도로 블록을 쌓아올릴 뿐, 벽에 시멘트를 바르지도 못하는 현실이다.

 # 야간 사랑의 집짓기 운동
 어느 날 저녁, 마침내 야간 공사를 감행했다. 그동안 틈틈이 실어날라 모은 블록을 공소 신자들과 함께 판자촌으로 옮겼다. 판자촌에 사는 두 형제의 도움을 받아 블록을 옮겨다 쌓고 있는데, 반상회를 마치고 나온 주민들이 블록 400개를 한 개, 두 개씩 날라주기 시작했다. 코흘리개 꼬마들도 블록 구멍에 긴 막대기를 끼어 날라주었다.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다. 저녁 8시에 시작한 이 사랑의 집짓기운동이 밤 12시쯤 완료됐다. 방과 부엌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양철 지붕을 얹었다.
 

 
▲ 한 밤 중에 판자촌 주민들과 사랑의 집짓기운동으로 완성해가는 젊은 미혼모의 블럭집.
 

 사실 우리는 판자촌 주민들 참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불쌍한 미혼모를 돕겠다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준 것이다. 우연히 시작된 일이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그날 밤 우리와 함께 손수 블록을 날라 만들어 주신 그분 작품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우리는 각자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곧 선교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게 여정에 동반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와 기도를 드린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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