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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에 만난 사람] "유선아, 넌 할 수 있어"… 기적 일군 엄마의 힘

장애인 딸 대학강단에 서게 한 엄마 김희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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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녀는 말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신다"고.
엄마 김희선씨와 딸 정유선 박사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살된 딸 뇌성마비 앓자
미련없이 가수 명성 포기
끊임없이 용기, 희망 심어
사랑이 장애 극복 원동력

미국 조지메이스대 교수
올해 최우수 지도자 선정  


   "저기… 그거 내가 하면 안 될까?"

 초등학교 4학년 유선이는 떠듬떠듬 말했다.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아이가 말했다.

 "행인1은 대사가 없으니까 유선이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서울 용산성당 주일학교 성탄절 연극. 뇌성마비 소녀 유선이는 간절히 원하던 연극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 비틀거리지는 않을까, 넘어지지 않을까 밤새 고민한 유선이는 휘청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떼어냈다. 주인공 뒤로 슬쩍 지나가는 행인 역할이었다.

 관객석에서 유선이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던 엄마는 눈물로 응원박수를 보냈다. 딸의 생애 첫 배역이었다.

 인기가수였던 엄마가 딸을 위해 무대에서 내려온 지 7년째 된 해였다. 엄마는 1960년대 인기를 한 몸에 모으던 3인조 그룹 `이 시스터스`의 가수 김희선(크리스티나, 71,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씨. 유선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던 김씨는 동화구연가가 됐고, 지금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설립한 색동회 이사를 맡고 있다.

# 뇌성마비 장애인 첫 박사

 여기저기 잘 돌아다녀 `쥐방울`이라 불렸던 소녀 정유선(리타)은 마흔두 살의 엄마가 됐다. 그는 현재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에서 보조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박사학위를 딴 그는 컴퓨터 자판을 치면 음성이 나오는 보조기기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자택에서 엄마 김씨를 만났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거실에는 딸이 2008년에 펴낸 자서전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가 놓여 있다.

 김씨는 최근 미국에 다녀왔다. 딸 정 박사가 3월 10일 조지메이슨대학에서 학생들이 선정한 `최우수 지도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상식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줬다. 화면 속 딸은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엄마를 빼닮은 미소는 아름다웠다.

 "오직 유선이를 위해 살았어요. 피눈물로 세월을 보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가 뭘 했나 싶어요. 오늘 이 순간이 온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에요." "유선이 이야기만 하면 왜 이렇게 바보같이 눈물이 나오는지…. " 김씨가 잠시 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훔쳤다.

 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딸 일기를 못 잊는다.

 "우리 유선이가 학교 매점에서 간식을 먹으면 친구들이 킥킥거렸어요. 점심시간에는 복도 창문에 서서 들여다보고…."

 일기장에는 "부모님은 왜 나를 태어나게 했을까.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게 너무 싫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고통은 없었을 텐데…"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공부를 잘 해야 세상에서 당당할 수 있다는 아버지 말에 정씨는 악바리처럼 공부했다. 성적이 우수했지만 대학입시에는 실패했다. 그는 아버지 권유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토론을 요구하는 유학생활은 식은땀과 편두통, 악몽으로 시달리게 했다. 그는 조지메이슨대학에서 공부하며 다양한 보조기기를 통해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장애인들을 만났다. 보조기기를 통한 의사소통을 수치스럽게 여겼던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

 보조기기는 그가 언어와 지체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희망의 날개를 달아줬다. 2004년에는 의사소통 보조기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중에 만난 장석화(장주기 요셉)씨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후였다.

#어둠을 밝힌 긍정의 힘

 화려한 조명을 받던 당대 최고 가수였던 김씨는 1973년 3살 된 딸이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는 청천벽력에 미련없이 무대를 떠났다. 사람들은 그에게 `가수 명성도 던져 버리고…`라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엄마로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는 남편(정현화 마르티노)과 함께 딸 뒷바라지에 나섰다. 초등학교 때부터 비장애인 친구들과 섞여 지내게 했고, 장애라는 편견의 벽 앞에 당당히 마주 섰다.

 "말이 어둔하고 걸음이 비틀거려도 세상 밖으로 자주 데리고 나갔어요. `너는 할 수 있어` `유선아, 너는 천사야`하는 말로 용기를 북돋아주고요."

 어린 시절부터 유선양 오빠와 남동생도 그를 정성껏 보살피며 의젓하게 데리고 다녔다. 유선씨는 2006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 의사소통 보조기기학회에서 `가족사랑 속에 우뚝 선 나`를 주제로 에세이를 발표했다. 가족의 응원과 사랑은 그가 장애라는 허들을 넘어서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딸에게 사랑을 쏟던 김씨는 기댈 곳을 찾아 1980년에 딸과 함께 세례를 받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았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고, 딸 유선씨도 기도하며 하느님과 자주 대화했다.

 "유선이가 첫 손주를 안겨준 날을 잊지 못해요. 그때 `하느님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신다`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삶은 기적이라며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그는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을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절실하게 붙잡고 고지를 향해 달린 이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말한다.

 정 박사는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하느님은 제게 넘치는 사랑과 복을 다 주신 분"이라고 했다.

 "부모님ㆍ형제ㆍ친구, 그리고 건강과 장애까지도 주셨잖아요. 만약 제가 모든 복을 가진 상태에서 장애가 없었더라면, 저는 교만과 자만으로 가득 찬 안하무인격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정 박사는 "하느님께서 저를 잘 조율해주셨다"며 "그러므로 하느님은 제게 모든 것을 주신 절대자"라고 했다. 이어 "내게 엄마는 모녀 사이를 넘어선 인생의 동반자이자 영원한 친구"라고 했다.

 할머니가 된 김씨는 "교수이자 두 아이 엄마, 아내로 살아가는 딸을 보면 대견하다"면서 "매일 파김치가 돼 집에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그가 이 세상 엄마들에게 한 마디 건넸다.

 "부모는 무엇보다도 자녀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줘야 합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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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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