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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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타이완(하) "니 스 타이완런마(너는 대만 사람이니)?"

조금씩 나누다보니 어느새 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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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재능은 없지만 존재 자체로 이곳 신자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
 
  대만 사람은 한국인과 피부색과 생김새가 유사하다. 언어가 달라 조금 다르게 느껴지긴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나와 함께 지내는 원주민들은 한국인과 피부색이 조금 다르긴 해도 대체로 비슷하다.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 사람은 조금 다르다`고 느낀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본다. 내가 "타이완런"(대만인)이라고 대답하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처음 대만에 파견돼 언어연수를 받을 때 교구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함께 언어연수 중인 수녀와 대화 하다가 안면 있는 한국 신부님을 만났다.

 한국말로 인사를 하려는데 신부님이 먼저 중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래서 일단 중국말로 인사를 하고 다시 한국말로 "신부님!"이라고 불렀더니 신부님은 "한국수녀님이셨어요? 중국수녀님 아니세요?"하고 물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이따금 한국교우들을 만나면 "수녀님은 꼭 중국수녀님 같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말을 하면 바로 대만사람이 아닌 것이 들통 난다. 그래도 대만 타이아족 원주민이라고 가끔 우긴다. 원주민들과 함께하는 행사에서 누군가 국적을 물었을 때 내가 "당연히 대만수녀죠"하고 대답하면 신자들은 더 없이 좋아한다.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이곳 신자들이 동족으로 생각해줄 때 마음이 즐겁다. 이곳에서 삶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지에 오면 으레 언어, 환경,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데 나는 별로 힘들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나는 천생 대만 사람인가 보다. 또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탈렌트는 없지만 존재 자체로 신자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 이게 바로 복음이 아닌가 싶다.


 
▲ 이곳 어르신들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요즘 한국 전통춤을 가르쳐드리고 있다.
 
 
 우리 본당 관할구역 내 위엔두언천주당과 쫑씽천주당에서 매주 3일씩 홀몸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산에서만 계시던 어르신들이 성당으로 내려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묵주 만들기, 풍선 아트, 종이접기, 악기 연주, 성가 부르기, 춤 교실, 그림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성당에 와서 친구들과 대화도 나누고 작품도 만들고 건강도 점검하는 어르신들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요즘 나는 어르신들 파마를 해주느라 바쁘다. 일주일에 이틀 어르신들을 만나는데 하루는 위엔두언천주당에, 하루는 쫑씽천주당으로 간다.

 파마를 하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이 줄을 지었다. 그래서 예약을 받아서 파마를 해드린다. 이곳에 오는 어르신들은 신자가 아닌 사람도 있고, 개신교 신자도 있다. 3개월에 한 번씩은 수녀들이 음식을 만들어 어르신들을 대접한다. 어르신들은 "수녀들이 만들어서 그런지 더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고 어르신들은 한국 전통춤을 배우길 원한다. 어느 대만 가수가 아리랑을 번역해 중국어로 불렀는데, 그 노래에 맞춰 출 수 있는 춤을 가르쳐 달라고 해 요즘 한창 연습 중이다.

 우리 원주민들 음식문화는 친교를 바탕으로 한다.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친분이 더 깊어진다. 본당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 나는 김치를 담가 가져간다. 신자들은 "수녀가 담근 김치와 시장에서 파는 김치는 맛이 다르다"며 좋아한다. 이들은 벌써 내 김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대만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음식 등 한국 문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우리 원주민들도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 몇몇 신자들은 김치 담그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래서 김치 담그기 수업을 하고 학생들에게는 한글을 가르친다.

 이곳 원주민들이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특별한 음식이 있다. 이엔쥬로우(찹쌀이나 좁쌀을 넣고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라는 음식인데 냉장고가 없어서 장기 보관이 어려웠던 육류를 이 같은 방법으로 요리해, 두고두고 먹었던 옛 어르신들의 생활지혜이기도 하다. 지금은 명절, 집안행사 때만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산에 사는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다. 언어를 비롯해 음식, 사람관계도 처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자들이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곧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게 아닐까?

 독자 여러분 중 `꿀벌탕`을 먹어 본 분이 있을까? 원주민 마을에서 살기에 먹어 볼 수 있는 특식이다. 산에서 생활하기에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선교사이기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삶이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 945201-01-126302
              예금주 : (재)천주교한국외방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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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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