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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페루(하) 잉카의 후손들과 함께 새 하늘 새 땅을 향하여(이사 6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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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루 시골마을 주민들은 가난하지만 넉넉한 인심을 갖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필자.
 
  2006년 한국으로 휴가를 오기 전 한 달여 동안 꾸스코주에 있는 시꾸아니대목구(pleratura sicuani)본당을 방문해 페루의 시골 마을을 체험했다. 같은 페루지만 사람들 피부색부터 시작해 언어, 풍습, 기후까지 모든 것이 리마와는 너무나 달라 다른 나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해발 3800m에 자리 잡은 마을은 우리나라 1960년대 시골마을과 비슷하다. 도로는 비포장이고 집은 초가집이다.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아간다. 영양 부족 때문인지 사람들은 작고 가냘프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해가 지면 온 마을이 어둠과 적막에 휩싸인다.

 하지만 인심은 넉넉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집으로 초대해 와띠아(감자구이)를 대접하고, 고마움의 표시로 사탕이나 과자를 건네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리고 손만 내민다. 영락없는 우리나라 옛 시골 사람들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계셨다면 이곳에

 하루는 22살 청년이 성당에 찾아와 혼인미사를 하고 싶다며 세례증명서를 떼 달라고 했다. 내가 세례대장을 내밀며 "직접 찾아보라"고 하자 청년은 머뭇거리기만 했다. 이유를 물어 보니 글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문맹인 젊은이가 있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밤에는 한 여인이 젖먹이 아이를 등에 업고 성당을 찾아왔다. 한 눈에 봐도 남편에게 매를 맞은 것 같았다. 그는 내게 "하루 밤만 쉴 곳을 제공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나는 성당을 지키는 책임자에게 여인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마련해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날 한 본당 신자에게 마을 상황에 대해 들었다. 마을에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었다. 교육, 건강 그리고 (술로 인한)폭력이었다. 교사들은 도시 출신이라 스페인어만 하고 아이들은 케추아어(지역 언어)만 알아들으니 선생님과 학생들이 소통이 되지 않았다.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하기에 일주일에 3일 정도만 교육이 이뤄진다. 식사는 매일같이 추뇨(말린 감잣국), 찐 감자, 볶은 감자, 콩 등으로 해결한다. 축제일이나 돼야 양고기를 먹기에 영양실조가 심각한 상태다.

 보건소가 멀리 떨어져 있어 의료혜택도 받기 힘들다. 산모가 출산 중에 사망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둠 속에서 밤마다 가정 폭력이 일어나고, 여성들은 삼촌이나 동네 청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경찰이 없어서 범죄를 저질러도 교도소를 가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피해자 부모와 협의해 양 한 마리 정도로 합의한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여기는 국가와 교회에서 버림을 받은 곳"이라고 한탄했다. 또 "70년 전에 마지막으로 본당신부가 있었다"고 말했다.

 리마로 돌아와 곧바로 성골롬반외방선교회에 "안데스산 속에서 사목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선교회는 "이 곳(리마)도 사제가 부족하고, 골롬반선교회 사목 방침과 다르다"며 거절했다. 고민 끝에 페루 지부장 신부님과 총장신부님께 내가 산 속에서 사목해야 하는 이유를 적은 편지를 보냈다.

 "리마에는 사제가 부족하지만 산 속에는 사제가 아예 없습니다. `부족`과 `없음`은 너무나 차이가 큽니다. 2000여 년 교회 역사에서 단 한 순간도 사제가 충분한 시기는 없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선교 활동을 하셨다면 어느 곳을 우선으로 생각하셨을까요. 아마 더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회에 봉사하시며 복음 선포를 하셨습니다. 폭력과 무지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기쁨을 나누는 것이 더 복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지를 보낸 후 나는 산 속으로 올 수 있게 됐고, 지금까지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열심히 사는 일꾼은 아니다. 다만 운동과 춤, 여행을 좋아하는 약간 게으른 사제다. 하느님께서는 일꾼으로 열심히 살라고 산 속으로 초대를 하신 듯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호칭 `빠드레`

 산에 도착하자마자 정부와 함께 학생들을 위한 마을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 페루 전 부통령 도움으로 빵공장을, 미국에서 방문한 신자들 도움으로 기숙사와 동물 농장을 짓게 됐다. 그리고 마을 주변 광산업체 지원을 받아 6개 마을에서 `폭력추방학교`, `영양실조 퇴치운동`, `학생들을 위한 계절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시골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인 부엌에서 꾸이(쥐과 동물)들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나는 이곳에서 본당 주임신부이자 마을식당 주인, 부모학교ㆍ계절학교 교장, 빵공장 사장, 기숙사 사감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가장 좋아하고 편안한 직함은 `빠드레(아빠, 신부)`라는 호칭이다.

 요즘은 한국이나 유럽에 여행을 가도 이 산 속 생활이 그립다. 키도 작고 냄새도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 내게 재잘거리며 뛰어와 안기는 아이들, 오후에 사제관을 방문해 공부도 하고 함께 운동할 것을 권하는 사람들, 빵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

 지금은 폭력 사건도 점점 줄고 이탈리아, 미국, 한국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인류 공동체`라는 말을 실감한다. 방문한 이들이 "빠드레 또마스는 정말 행복하시겠습니다"하고 말하면 "맞습니다. 아주 행복합니다"하고 대답한다.

 성당 마당에서 양들과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울타리 근처에서는 닭들이 모이를 쪼고, 한 쪽 구석에서는 돼지들이 서로 "꽥꽥"하고 소리를 지른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어울려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산 속이다. 이곳은 새하늘과 새땅을 향한다.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평화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천사들과 함께 시끌시끌하게 살아가는 하늘 아래 첫 동네에 모든 분들을 초대한다. 모든 교우분이 복음을 선포하는 멋진 선교사가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행복하길 기도한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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