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선교지에서 온 편지] 멕시코(하)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낮은 곳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열정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성 금요일에 가족과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 주민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복까 델라 씨에라에서 가정방문을 다니면서 마을 주민 대부분이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여자들은 토르티야(멕시코 주식인 납작한 옥수수빵) 만드는 법과 고기 잡는 법을 배우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게 삶의 전부이다시피 합니다.

 #혼인성사 받은 성인이 없어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는 여인들 말을 들으며 왜 예수님께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곳 여인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기쁜 소식은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발견하고 기쁨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제 소명이었습니다. `그들과 나의 소명을 완성하기 위해 더욱 힘차게 나아가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의욕을 잃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 중 어린이 2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성체를 모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장에게 "고해성사를 안 보신 분들이 많은가 봐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 마을에 사는 사람 중 혼인성사를 한 부부가 한 부부도 없어서 영성체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다들 교리를 공부한 사람들인데 무슨 이유로 혼인성사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에게 "혼인성사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자 "이제 와서 무슨 혼인성사를 받느냐"며 그냥 이대로 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젊은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생각이 없다는 사람,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혼인성사의 은총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혼인성사를 주례해 줄 사제가 없다"는 한 여인의 말에 조금 위로가 됐습니다. 혼인성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들 안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을 믿으며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내가 공연히 율법적으로 판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수녀님들은 마을 사람들의 가정성화를 위해 기도하며 섬기는 마음으로 어린이와 청년, 어르신들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들은 한 형제요, 자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민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 시간이었다고 기뻐하면서 마음을 활짝 열고 웃었습니다. 감사와 은혜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성 금요일에는 가족별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번갈아 십자가를 들고 기도하며 "처음으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기도한다"고 좋아하는 그들 모습은 제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이곳 주민들에게 필자는 진정한 풍요로운 삶이 무엇인지 배웠다.
 

 #예수님 함께 하신 부활 대축일

 그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마음속에는 부활하신 예수님 평화가 충만한 듯 보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끌어안으며 기쁨의 인사를 나눴습니다.예수 부활대축일 전야는 희망과 빛이 가득했습니다.

 주민들과 헤어지면서 "휴가 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느님 덕분에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풍요로움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하느님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지금도 그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을 삶의 양식으로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섬기면서 살게 하소서.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로 가게 하소서. 사랑의 열정이 늘 타오르게 하소서. 이것(선교지 생활)이 당신께서 제게 주시는 참행복임을 알았습니다. 이 길이 제가 당신 위해 가는 길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저는 늘 이런 기도를 바칩니다. 이 편지를 쓰는 지금 복까 델라 시에라 주민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그곳을 다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멕시코에는 사제가 없어서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수많은 하느님 백성이 있습니다. 또 선교사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멕시코 선교를 시작한 지 25년이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처럼, 우리 수녀들은 선교지에서 기쁨과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 구원사업의 도구가 되겠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9-0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8

호세 14장 2절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