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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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아이티(상) :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여기서 어떤 일을 하길 바라실까?

소외된 어르신들 눈물 닦아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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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의료진 중심으로 아이티에 파견된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자매회 수도자들이 병든 어르신을 돌보고 있다.
양로원에 파견됐지만, 인근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도 돌보고 있다.
 
 
  아이티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저녁 무렵,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사는 빈민가를 걸으며 `하느님께서는 과연 우리가 여기서 어떤 일을 하길 바라실까` 기도 중에 물었다.

 그때 우리들 발길은 어느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 냄새가 진동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대변을 보시고 자신의 몸과 벽에 그걸 온통 칠해 놓았다.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는 `꽃동네 정신`으로 얼른 물과 수건을 준비해 할아버지를 씻겨 드렸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저 여기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린 그렇게 살기로 했다.

#지진이 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예수의 꽃동네 형제ㆍ자매회 수사 2명과 신부 1명, 수녀 3명은 지난 4월 아이티 땅을 처음 밟았다. 아이티에 도착하자마자 수도 포르토프랭스대교구 주교좌성당과 대통령궁에 들러 끔찍한 지진 참상을 직접 봤다. 지진 피해 현장이 마치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듯한 풍경에 마음이 무거웠다.

 지진이 난 지 3년이 지나 복구가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본래 가난한 나라이기에 주민들이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거리에는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젊은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넘쳐나는 쓰레기, 위생과는 담 쌓은 듯한 음식, 구걸하는 부랑인뿐이다.

 우린 이 가운데서 갈 곳 없는 어르신들과 함께 살게 됐다. 아이티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비교적 높지만 노인들에 대한 관심은 매우 적다. 우리가 아이티에서 소외된 어르신들과 함께 살게 된 것은 하느님 은총이다.

 아이티 꽃동네 시설에 갈 곳 없는 어르신 250여 명이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모여 살다 보니 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집 문간에서 성냥을 파는 할머니, 목화로 심지를 만들어서 파는 어르신…. 우리도 음식을 만들다가 식재료가 떨어지면 급하게 행상 할머니들에게 가서 재료를 사오곤 한다. 산책하다가 집을 잃어버려 집을 찾아 달라고 하는 어르신도 있고, 몰래 사무실에 들어와 콜라를 들고 가는 할아버지도 있다. 쓸모없는 고철로 화로를 만들어 장사하시는 할아버지, 이웃집 사람과 싸우다가 분에 못이겨 우리를 찾아오는 분도 있다. 한 할아버지는 "잘 지내느냐"고 물으면 항상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파(malad)"라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그 귀한 커피를 우리에게 선물하거나 직접 끓여 주시는 어르신도 있어 힘이 난다.

 처음에는 주변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매일 쓰레기를 줍고 소각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그렇게 실천으로 보여주니 몇 달이 지난 지금은 어르신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아무데나 버리지도 않는다. 또 집안 위생이 좋지 않아 고압 세척기를 빌려 집집마다 청소를 했는데, 어르신들이 자기집도 해달라고 요청해 쉴 틈이 없을 지경이다. 요즘 들어선 모기장도 구해 전하고, 물을 길어다 주기도 한다.

 워낙 마을이 크고 집도 많아 여기저기 손 봐야 할 데가 많다. 매일 저녁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잘 계시는지 방문을 한다. 혹시나 아픈 이들이 있으면 함께 기도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돌아온다. 어쨌든 이제는 어르신들이 우리가 찾아오기를 몹시 기다린다.


 
▲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자매회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에 사는 아이티 어르신들이 미사를 봉헌한 뒤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다.
 
 
#더 도울 방법 없어 안타까워
 얼마 전 한국에서 파견된 단비부대를 방문했다. 아이티에 파견되면서 한 번도 미사를 봉헌하지 못했던 신자 부대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은혜로운 시간도 가졌다. 우리 일정 때문에 매주 미사를 봉헌할 수는 없지만, 주일미사 강론만큼은 꼭 준비해 그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우리는 매주 양로원 가족들과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한다. 어르신들은 자신이 가진 옷 가운데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미사에 참례한다. 성가도 우렁차게 잘 부르고, 파견성가를 부를 땐 다들 흥에 겨워 춤을 춘다. 지난 성모승천대축일에는 우리 수도자들이 사물놀이로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다. 우리가 여기에 온 뒤로 여덟 번째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쓸쓸히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분 시신 앞에 모여 외롭게 텅빈 집에서 생을 마감한 할머니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 `임종자를 위한 집`을 짓고 싶다고 하느님께 청하고 있다.

 아이티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려면 한도 끝도 없다. 물과 전기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진정한 어려움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티 꽃동네 가족들을 위해 우리가 더 이상 해 줄 게 없다는 한계 상황에 부닥치는 것이다.

 우리 삶이 고단할지언정 그로 인해 많은 영혼이 구원된다면 그 이상 기쁨이 없다. 아이티 꽃동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후원계좌  우체국 301341-05-001804
                 예금주 : 예수의 꽃동네 유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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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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