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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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아이티(중) 아이티 꽃동네 양로원의 하루

정창용 신부(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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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 꽃동네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안과를 개원한 안과전문의 김 야고보 수사가 진료하고 있다.
 
 
  몇 주 전 사이클론이 지나갔다. 아이티에 와서 처음 경험하는 열대성 저기압 태풍이라 걱정이 돼 초저녁부터 집집마다 창문 단속을 하라고 일렀다.

 이윽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옥상에 설치한 태양열 집열판이 바람에 날아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밤새도록 잠시 잠잠하다가 파도처럼 밀려오곤 하는 바람소리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깨어나자마자 부랴부랴 마을이 어떻게 됐는지 살폈다.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부러진 채 흩어져 있고, 건물 옥상 물통이 파이프와 분리돼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주방과 세면장에서는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어르신들과 집들은 무사했고 큰 피해는 없었다.

 아침미사를 봉헌한 뒤 식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두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알아보니 그날 아침에 할머니 한 분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인 김 야고보 수사와 간호장교 출신인 최 마지아 수녀가 서둘러 그 집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혼수상태였다. 자세한 원인은 병원에 가야 알 것 것 같기에 할머니를 모시고 한 시간 넘게 비포장도로를 달려 병원에 데려다 줬다.

 안과 전문의인 김 야고보 수사는 인근 병원에서 안과를 개원했기에 일행과 함께 출근했다. 아직은 손님이 하루에 6명 정도밖에 없어서 문을 닫아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환자 중에는 제때 치료를 하지 않아 상처가 상상할 수 없이 악화된 채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 의사로서의 기쁨을 맛본다. 얼마 전에는 16살 소녀의 눈에 달린 악성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서 아이 웃음을 되찾아 줬다.


 
▲ 두 손을 머리에 얹어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를 하는 어르신 표정이 밝다.
아이티에 꽃동네가 들어서고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자매회 회원들이 파견된 이후 마을 주변 환경도 많이 깨끗해졌고 공동체도 한결 밝아졌다.
 

#서로 `단비`같은 존재
 김 야고보 수사가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는 직원들과 아침회합을 한다. 김 타대오 수사와 정 마지아 수녀의 불어 실력이 뛰어나 `반벙어리`인 우리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하루하루가 힘겹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밝아진 표정을 위안으로 삼는다. 김 타대오 수사는 캐나다에서 살다가 예수의 꽃동네형제회에 입회, 신학교에 다니던 중 아이티로 떠날 선교사가 부족해 휴학하고 왔다. 김 수사의 능숙한 불어 실력은 우리에게 단비와도 같다.

 양로원을 포함해 우리 마을에는 인근 본당 청년들, 신부들, 수도자들, 양로원에 입소하고 싶어하는 어르신들까지 꾸준히 찾아온다. 만일 김 수사가 없었다면 우린 모두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김 수사는 컴퓨터를 전공한 터라 양로원에 있는 모든 PC를 정비하고 인터넷도 가능하게 해줬다. 아이티 사람들에게 그 일을 부탁하면 족히 한 달 넘게 걸려야 했을 것을 이렇게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 마지아 수녀는 살림꾼이다. 손재주가 좋아 재봉틀에 앉기만 하면 천 하나로 침대보에 방석, 커튼, 기저귀 등 모든 걸 척척 만들어낸다. 한국에 있을 때 재봉 관련 일을 한 경력이 아이티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천도 부족하고 질도 좋지 않지만 정 수녀 손에 들어가면 천은 어느새 쓸모 있는 물건으로 탈바꿈한다. 초기에 양로원의 때 묻은 베개와 침대보를 바꿔주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몹시 기뻐했다. 우리의 기쁨이 더 컸지만 말이다. 정 수녀는 또 한국에서 방송 일을 했기에 카메라로 영상을 찍는 기술도 일품이다. 순간순간마다 가족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곤 한다.

 사실 처음에 왔을 때 양로원은 어르신들의 위생상태나 건강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어르신들은 가족들에게서 버림받거나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터라 마음의 병이 깊었다. 온종일 집 앞에 나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멍하니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은 지켜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어수룩한 노래는 또 하나의 기쁨
 꽃동네에서 찬미 진행을 많이 했던 이 시몬 수녀는 노래를 잘 부를 뿐 아니라 율동도 잘한다. 이 수녀 덕에 매일 오후 4시는 찬미시간이 됐다. 뜨거운 햇볕이 기울면 이 수녀와 김 야고보 수사는 기타를 들고 밖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금방 30~40여 명이 모여든다.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는 어수룩한 우리 현지어 노래가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기쁨이 되고 있다.

 저녁이 되면 아이티 꽃동네 책임자인 최 마지아 수녀는 어르신들을 만나러 나간다. 밤중에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사람이 없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의 건강을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날마다 어둑한 골목길을 따라 250여 채에 이르는 집을 방문하고 나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집집마다 방문해 어르신들 기저귀도 갈아주고, 건강도 점검하고, 때론 집을 찾지 못해 헤매는 어르신들에게 집을 찾아 주기도 한다. 이런 일정이 밤마다 반복되니 이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정 수녀를 기다리다가 발자국 소리가 나면 은근슬쩍 먼저 밖으로 나온다.

후원계좌 우체국 301341-05-001804
              예금주 : 예수의 꽃동네 유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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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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