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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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아이티(하) 길 잃은 양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삶

정창용 신부(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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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 꽃동네 미사는 늘 사랑으로 가득 찬다.
어눌한 발음에 어눌한 표현이지만 정창용 신부의 열정적 불어 강론에 아이티 꽃동네 가족들은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웃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내 존재에 이웃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이웃의 필요에 따라 내 존재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엔 이런저런 계획이 있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우리에게 요구된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과는 너무 달랐다. 어르신 250여 명이나 모시자니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지만 육적 욕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것 모두가 필요한 것 투성이였다.



 
▲ 주일 아침이면 거동이 어려워 미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중환자들을 위해 정창용 신부는 병자 영성체를 한다.
 
 
 
#믿음만이 모든 것 이루는 힘
 아이티 꽃동네에선 날마다 아침미사가 봉헌된다. 아이티를 기억해 주는 모든 이들과 가정, 아이티 꽃동네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바친다. 매주 토요일엔 특별히 온 가족이 모여 미사를 봉헌한다. 참례자는 200여 명으로, 불어로 미사를 봉헌해야하니 일주일 전부터 미사 강론을 준비해 암기를 해야 한다. 강론 원고를 보며 읽는 경우도 있다. 어눌한 표현과 발음이지만, "아멘"이라는 응답을 통해 강론내용이 전해지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그 누구보다 힘차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을 낸다. 마음속에 하느님을 모시는 사람들이 낼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나도 알고 있고, 이들도 분명히 알고 있다. 믿음만이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이라는 것을.

 주일 아침이면, 몸이 불편해 미사를 참례하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해 병자 영성체를 한다. 비좁은 집안에서 휠체어에 앉거나 침대에 누워 있는 채로 수도자들과 함께 성가를 부르며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이들의 목소리는 감동적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수도 없이 외치며 예수님 사랑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우리 수도자들도 숙연해진다.

 사제로 살아가지만, 사제로 사목할 때 외엔 잡부다. 어르신들이 원하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든 수요를 감당하려면 쉴 틈이 없다. 전구를 갈아주고, 돼지우리를 청소하고, 막힌 변기를 뚫고, 낙엽을 쓸고, 배관을 설치하고, 계단 만드는 일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쓰다 남은 나무를 가져다가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벤치와 의자를 만들고, 여기저기서 고쳐 달라는 요청을 들어주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점을 해결해 주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되고 기도도 해줄 수 있게 된다. 내가 기도해 주겠다고 머리에 손을 얹으면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겸손히 기도를 받아들인다. 이러니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은총을 내려 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밤이었다. 지나치다보니 문고리가 밖에서 끈으로 묶인 채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끈을 풀고 들어가 봤더니 침대 시트랑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놓인 채 침대 위에 아녜스 할머니가 그냥 앉아 있었다. 아이티 꽃동네에 입소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일흔 살 아녜스 할머니는 지진으로 자녀들을 대부분 잃고 간신히 아들 하나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치매를 앓게 돼 하는 수없이 아이티 꽃동네로 들어오게 됐다.

 지진이 난 지도 2년이 지났지만 자녀들 얘기를 할 때면 울먹이곤 하는 할머니는 아이티 꽃동네로 오고나서도 화장실이 무서워 집 안에 소변을 보기도 하고 집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지역 주민들 도움으로 양로원에 돌아오기도 한다. 때론 옆집 어르신 짐을 모두 정리해 밖에 내놓기도 한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아들 집에 가려고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 어르신께 "저랑 여기서 함께 살아요"하고 말했더니 가만히 쳐다보다 웃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인다. "매일 아침에 제가 있는 사무실로 오셔서 저를 좀 도와주세요. 기다릴게요. 찾아오실 수 있지요?"하고 말했더니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선 그 다음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어떤 형제가 그 어르신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봤다. 그 어르신은 나를 찾아오려고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은 것이다. 그분께 작은 희망의 등불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젠 내가 그분 집을 찾아가 함께 내 사무실로 출근하고 퇴근 시켜드려야 할까 보다. 길을 익힐 때까지.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이 아이티의 길 잃은 양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여러분의 삶도 빛으로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꽃동네회 설립자 오웅진 신부님 말씀이 기억이 난다. 오 신부님은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은 뒤 단 한 번도 주일미사를 거른 적이 없고 신부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미사와 시간전례(성무일도)를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늘 "무슨 일을 하든 끝까지 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린 모두 이곳에서 끝까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사는 삶을 이어가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청한다.

후원계좌 우체국 301341-05-001804
            예금주 : 예수의 꽃동네 유지재단



가톨릭평화신문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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