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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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① "아주 특별한 공동체"

이윤주 수녀(메리놀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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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세바스찬 여자교도소 내 한 여성수감자가 딸 세례식에 함께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덜컹` 하고 작은 철문이 열린다. "어서 오세요, 수녀님. 오늘도 우유 가지고 오셨어요?" 낯익은 교도관이 미소를 지으며 내 보따리를 받아든다. 오늘 보따리는 커다란 마대자루 4개다. "예, 오늘은 아이들 신발하고 칫솔도 좀 가져왔어요. 지난주에 태어난 아기에게 줄 옷도 좀 있고요." 간단한 몸 수색에 이어 소지품을 점검 받은 뒤 산 세바스찬 교도소 안으로 들어선다.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 그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 바로 교도소다. 볼리비아 교도소는 우리가 상상하는 교도소와는 딴판이다. 담장만 높을 뿐, 커다란 자물쇠로 잠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가정집 건물과 함께 마당에 빼곡히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누가 누군지 잘 구별도 안 된다. 죄수복도, 철창도, 감방도 보이지 않으니 누가 수감자이고 누가 방문자인지 알 수도 없다.

#교도소에서 아이를 키운다고?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 수감자들이 아내와 노부모,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들어와 함께 사는 교도소라니. 그 안에서 아이들을 키운다고? 기가 막힌 상황이다. 게다가 식당도 있고, 구멍가게도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너무 자유로운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직접 보니 그 열악하고 비참한 환경에 `아, 어떻게 이렇게…`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식당과 가게가 있는 이유는 수감자들이 돈을 내고 밥을 사먹어야 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각자가 알아서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수감자들은 대부분 굶는다.

 80명 정도를 수용하는 작은 공간에 300여 명이 부대끼며 산다. 누추한 몸을 누일 방이나 화장실 같은 기본적 시설조차도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 교도소에서 음식도, 담요 한 장도 제공받지 못한 채 아이들을 키우고 날마다 방값을 지불해야 한다. 방값 걱정에 한숨뿐인 수감자들을 보면 나도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방도 주지 않고 흙바닥에서 한뎃잠을 자게 하면서 방값을 내게 하다니….`

 코차밤바 시에 있는 대여섯 개 교정시설 가운데 난 3곳을 날마다 방문해 수감자들을 만난다. 전 세계 많은 선교사들처럼 나도 역시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로 살아간다. 교도소에 가면 여섯 살 미만 아이들 몸무게를 재고 영양 상태를 점검한다. 대부분 몸무게는 미달이고 영양 결핍과 함께 비위생적 주거 환경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고생한다. 아이들 엄마를 불러 우유와 영양제를 나눠주며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물은 꼭 끓여 먹이고, 손을 자주 씻게 해주세요." 그러면 엄마들은 수줍게 웃으며 "네, 그럴게요. 수녀님. 물이 나오면요" 한다. 그럴 때면 아차, 싶다. `아, 그렇지. 물이 늘 있는게 아니지.`

 열일곱 살 먹은 남자 아이가 이웃집 TV를 훔쳐내 팔려다 붙잡혀 들어온지 5개월째다. 고맙게도 피해자가 선처를 부탁해 조건부로 곧 풀려날 수 있게 됐는데, 교도소에서 나가도 갈 곳이 없는 이 아이는 군에 자원입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닌 게 고작이라 아직 글이 서툰 그를 돕고 싶어 대학생 봉사자에게 글공부를 돕도록 했다.

 만삭으로 교도소에 들어온 임신부가 예쁜 아들을 낳았다. 아기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싶은 엄마는 나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어미가 죄인인데도 아이가 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서류도 해 올 수 없고, 돈도 드릴 수 없는데…."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미사를 해주러 오는 사제에게 부탁해 작은 초를 준비했다. 교도소 안 허름한 경당, 죄수복을 입은 예수상 앞에서 아기의 소박한 세례식이 치러졌다. 아기 엄마는 또 한 번 눈물을 훔친다.


#어느새 친숙해진 `특별한 공동체`
 이제 제법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됐다. 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많이 웃고, 같이 분노하고, 울다보니 이제 교도소라는 공간이 내겐 친근하고 편안하기까지 한 공간이 돼버렸다. 내가 날마다 그곳에 있는 것을 본 어떤 수감자는 나에게 무슨 일로 들어온 수감자냐고 묻기도 한다. 축제 날이면, 교도소 안에서도 죄수들은 전통의상을 차려 입고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춤을 좋아하는 이곳 사람들과는 함께 춤을 춰야 친해질 수 있다. 춤이 끝나면 같이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렇게 시나브로 친해진 사람들은 아주 개인적이고 힘든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나누게 된다. 내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이들이 고마워 나도 내 마음 문을 한껏 열고 만난다.

 교도소처럼 보이지 않는 공간, 죄수복이 없으니 죄수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있으니 고통이면서도 조금은 덜 외로운 수감생활, 한솥밥을 먹고 마당에 버섯처럼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작은 공동체 같은 교도소. 이 특별한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용기를 내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나도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다. 아니, 나는 이미 이 공동체의 일원이고, 이 안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하느님을 만나고 그 하느님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후원계좌 농협 351-0416-253553
             예금주 : 메리놀수녀회(Maloney, Jean Marie)


 
▲ 교도소 내에서 살아가는 수감자의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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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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