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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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③ 정의를 위한 기도

이윤주 수녀(메리놀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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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 재소자들이 만든 공예품을 판매하던 이윤주(가운데) 수녀가 시장에서 만난 후원자, 고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우리 수녀회 설립 백주년 행사 참석차 한국에 다녀오느라 한 달간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니 교도소에서 같이 일하는 수녀님이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구는 갑자기 아파서 병원으로 실려 갔었고, 다섯 아이들이 첫영성체를 했고, 두 주일 전 10명 가량 새로 들어왔고, 결핵으로 고생하던 할아버지 수감자는 내가 없는 사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정의의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
 날마다 교도소 안에서 접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아프지 않은 이야기가 없지만, 내게 가장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밥을 굶는 이야기도, 아파서 죽어가는 이야기도 아니다. 억울하게 교도소에 들어와 아무런 법적 도움도 받지 못한 채 평생을 고통과 원망 속에 살다가 죽어가는 무고한 사람들 이야기다.

 정의의 하느님께 기도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목이 멘다. 평신도 선교사이자 변호사로 함께하는 동료의 말을 들으니, 수감자들의 80 이상이 형을 선고받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미결 상태로 형이 확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겠구나 생각하겠지만, 실은 현장에서 체포돼 곧바로 교도소로 이송돼 수년간 변호사도, 검사도 한 번 만나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사람들을 잡아다가 교도소로 넘기면 그만이다. 충분한 사후 조사는커녕 재판절차가 없으니, 수감자가 직접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으면 재판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평생을 교도소 안에서 살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돈으로 하루 500원에 불과한 한 끼 식사도 사먹을 형편이 되지 않는 수감자들이 어떻게 변호사를 고용한다는 말인가? 처음엔 억울해하고 분노로 몸부림치지만 절망적 현실에 모든 것을 곧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도 적잖다.

 억울한 사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버지가 친딸을 성폭행하고 도주했는데, 평생 감자만 캐던 시골 아낙은 이 기막힌 일에 가슴을 치며 울다 이웃들 조언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다음날 범행을 방조했을 것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로 수감됐다. 벌써 2년이 지났지만, 검찰도 변호사도 만난 적이 없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천막생활을 하던 집시 가족은 갓 태어난 아기와 대여섯 살 어린이들, 부모와 고모 가족까지 모두 8명이 한꺼번에 교도소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이용해 마약을 운반하고 아이들한테까지 마약을 먹였다는 확인되지 않은 죄명이 붙어 있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국적이 다른 나라여서 해당국 정부와 먼저 이야기를 하고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전부다. 잡혀올 때 갓 낳은 아기는 지금 다섯 살이 됐다.

 다리가 아파 잘 걷지 못하는 한 원주민 할머니는 교도소에 들어온 지 25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눈 게 단 세 번뿐이다. 출생증명서도, 신분증도 없는 이 시골 원주민 할머니 사건을 맡았던 변호사는 처음 서류를 만드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릴테니 기다리라고 했다는데 무려 25년을 기다렸다. 변호사에게 연락이 끊긴지도,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려 돈을 모으던 할머니 남동생이 죽은 지도 이미 오래다.


 
▲ 볼리비아 코차밤바시에 있는 교정시설 중 한 교도소.
등대처럼 솟은 망루를 끼고 회색빛 낡은 담이 이어진다.
 
 
#신분증을 가져본 적 없는 이들
 믿을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가슴 아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린 무료, 혹은 적은 수임료로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들을 찾아다닌다. 때로는 심리학자나 의사들 소견이 필요할 때도 있어 그들도 만나야 한다. 비용을 지원받을 곳이 있는지도 알아봐야 하고, 신분증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상당수 수감자들의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만들러 관공서를 돌아야 할 때도 있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하지만 이들의 억울한 삶만큼 어려울까 싶다.

 "그래요, 하느님. 제가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당신의 정의를 믿습니다. 그 믿음이 있으니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이 돌보신다는 것을 믿고 결국은 하느님의 정의가 그들을 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도록 저희들을 도와주세요." 힘들었던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작은 기도를 드리며 위로를 얻는다.

 기도만큼이나 내게 위로가 되는 건 당연히 오랜 기다림 끝에 기적처럼 들려오는 기쁜 소식들이다.

 20대 초반 젊은 청년 수감자가 교도소 내 한 구석방에서 오랫동안 혼자 앓아왔다. 그는 에이즈 말기 환자다. 열악한 교도소에서 당하는 고통에다 동정조차 받지 못하는 불치병을 앓으며 그는 죽음을 기다려왔다. 오랜 시간에 걸친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인내가 모아져 호스피스 시설로 송치되기에 이르렀다. 죄수이기에 여전히 제한을 받지만, 따스한 보살핌 속에서 눈을 감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하느님의 정의를 믿고 그 정의를 위해 힘을 보태는 사람들의 노력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부당함에 분노하고 억울한 사연에 가슴을 치는 이들도 절망하지 않기를, 또한 하느님 정의가 그들을 살릴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후원계좌 농협 351-0416-25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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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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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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