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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칠레(상) 누구보다 아파하고 계실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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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고 있는 뿌엔떼 알또는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남쪽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동네다.
사진은 공소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를 찾은 아이들.
 
 
  뿌엔떼 알또(Puente Alto)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 남쪽에 있습니다. 피노체트(1973년 쿠데타로 정권 장악) 군사독재 시절에 도시개발이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남쪽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난한 동네입니다.

#마약으로 병들어 가는 도시
 쏘냐 로하(Zona Roja, 적색구역)로 분류된 이곳은 칠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범죄율이 높습니다. 특히 마약은 사람들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개인은 물론 수많은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성마티아본당 성가정공소의 관할 구역도 마약문제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저와 남편(박정호, 스테파노)은 어려운 가정을 찾아다니며 그들과 함께합니다. 또 공소 복지부에서는 매주 수요일 국수나 쌀, 소금, 설탕 등 보관 가능한 음식들을 준비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 주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가족이 마약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공소에 도움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가족 중에 마약 혹은 알코올 중독자가 있다고 호소합니다.

 체칠리아 아주머니도 고통받는 이들 중 한 명입니다. 여느 수요일 오전과 다름없이 공소 복지부에서 일하는 자매님들과 함께 공소에 있는데 체칠리아 아주머니가 들어왔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그분 표정을 본 순간, 그분이 감당하는 삶의 무게가 제 마음을 짓누르는 듯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당뇨에 고혈압을 앓고 있고, 관절이 좋지 않아 일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이고, 아들은 마약에 손을 댄지 2년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 아주머니 집을 방문했습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집 벽에는 그분의 마음처럼 상처들이 가득했습니다. 아주머니에게는 이제 스무 살이 된 아들 오스칼이 있습니다. 벽에 얼룩진 상처는 아들이 마약 살 돈이 필요할 때마다 행패를 부려서 생긴 것들이었습니다.

 약기운에서 깨어나면 더없이 사랑스러운 아들이지만 금단증세가 나타나면 마약을 구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합니다. 옷가지들은 약을 사기 위해 오래전에 내다 팔았습니다. 돈을 달라며 아주머니를 때리고, 아주머니가 먹는 약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아주머니는 이 힘겨운 현실과 외롭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오스칼은 친아들이 아니라 남편의 외도로 생긴 아이입니다. 다른 자녀가 없는 아주머니는 그런 오스칼을 남부럽지 않게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아주머니는 "정성스럽게 키운 아들을 마약이 다 망쳐놓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두 아들의 엄마인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주머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힘내라. 기도하겠다"며 안아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이런 고통의 시간을 오직 신앙 하나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오스칼은 상상한 것과 달리 부끄럼이 많고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평범한 젊은이였습니다. 3년 전 호기심으로 시작한 마약 때문에 오스칼은 점점 병들어 갔습니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마약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
 선교사로 살면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들을 위로하고 함께할 수는 있었지만, 마약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지만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마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한국에 있을 때 `9시 뉴스`에서 봤던 범죄자 모습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울 전문지식도 부족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약물중독이나 알코올중독이 질병이라는 사실입니다. 개인 의지만으로 치유할 수 없으며 체계적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마약 중독자나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 마약 중독 혹은 알코올 중독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고통 받는 형제자매로 받아들인다면 편견과 두려움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교구에서 매년 여는 여름학교에서 `약물중독 예방을 위한 사목`이라는 주제로 강의하신 어느 한 수녀님께서 강조한 내용입니다. 강의를 듣고나니 오스칼 같은 마약중독 젊은이들에게 한발 더 다가갈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스칼은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아들이 마약을 살 돈을 구하기 위해 이웃집 담을 넘기 시작하자 아주머니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입니다. 아주머니는 "마음이 아프지만 아들이 마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곳에서는 많은 젊은이가 오스칼처럼 살아갑니다. 이들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박탈감과 무기력함 때문에 더 쉽게 유혹에 빠집니다. 마약과 술에 찌든 이들 안에서 누구보다 더 아파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후원계좌 : 스탠다드차다드은행 225-20-435521
                예금주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 남편(박정호)과 함께 칠레에서 부부 선교사로 활동하는 필자(안고 있는 아이는 필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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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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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9장 19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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