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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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대만- 내 이름은 진(金) 빠빠

김정웅 선교사(성 골롬반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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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사정으로 부모 품을 떠나 보육원에서 커가는 아이들은 내게 천사이자 작은 예수님이다.
이 아기들이 웃어주면 나는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평신도 선교사로 6년째 대만에서 살고 있습니다. 2년 전 동료 선교사였던 아내와 결혼을 해서 부부로 살고 있지만 아직 아이가 없습니다.

 제가 대만에 와서 선택한 소임지는 보육원입니다. 대만 신북시에 위치한 천주교 복지재단으로 국내외 입양사업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보육원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부모 손에서 자라지 못하게 돼 사회복지사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가장 어린 아기는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갓난아기이고 제일 큰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어떤 아이는 외국 양부모를 만나 입양절차를 진행 중인가 하면 부설 보육원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 보육원에서 갓난아기가 있는 영아반과 3살 미만 아이들이 있는 유아반에서 일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보모들을 보조하는 일로 아기들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이유식 먹이는 일입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 저를 `진빠빠`라고 부르지요.

 영유아반에서 일하는 사람 중엔 남성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아기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남자는 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육원에서 몇 안 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보육원 아이들이 아빠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제 역할인 셈입니다.

 #대만까지 가서 겨우 보육원 아빠?
 제가 어머니께 보육원에서 아기를 돌보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는 어려서부터 아기들을 무척 예뻐했어. 그래서 선교사 소임도 아기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구나"하시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셨었죠. 다시 생각해 봐도 아기들만 보면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교사로 살면서 겨우 이런 일을 하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선교사로 대만에 가서 겨우 보육원에서 일하냐고 의아해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입장에서도 맨 처음 소임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좀더 그럴듯한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영화에 나오는 선교사들처럼 멋있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 뭔가 큰 업적을 남겨야 할 텐데 하는 남의 눈을 다분히 의식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보육원 소임이 성에 찰 리가 없었지요.

 만약 제가 보육원에서 일하면 "겨우 그런 일을 하려고 대만에 갔느냐, 선교사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는 핀잔을 받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아기들 속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 끝에 며칠 보육원에서 자원봉사를 해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첫날에 제가 처음으로 분유를 먹였던 아기를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귀여웠느냐고요?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여자아기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기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분유를 먹이는 내내 저를 한 번도 안 쳐다 보고 멀리 창문 쪽만 쳐다보더군요. 다른 소임지에서 아기들을 돌본 적이 있기에 그 아기 모습이 정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의 눈을 맞추며 교감을 하는 것이 아기들 본능 아닌가요? 그 아기는 그 본능마저 무시한 채 다른 곳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대만 아기는 다른가 보다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면 그 아기들은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을 돌봐주는 제 모습을 뇌리에 새기기 위해 열심인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아기는 이 보육원에 오기까지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과 눈 맞출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방치됐던 아기인 거죠.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야 할 아기가 세상을 등지는 법부터 알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보육원에서 일해야 할 이유를 처음 만난 아기에게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 후 보육원 측에 이곳에서 소임을 하고 싶다고 청했습니다. 다행히 보육원 측에서 저와 제 아내 모두를 기꺼이 받아 주었습니다.

 새로운 소임을 시작하기 전에 며칠 쉬는 사이에도 딴 곳을 쳐다보던 그 아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임을 시작한 날부터 출근하고 퇴근할 때 한 번씩 그 아기를 안아주며 제 볼을 아기 볼에 비볐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는 대로 분유를 먹였습니다. 아기들이 많다 보니 매번 저에게 분유를 먹일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기들이 스킨십을 통해서 위안을 받는다는 것을 익히 배운 터라 분유를 먹일 때도 손을 꼭 잡고 눈을 쳐다보며 그 아이만을 생각하며 먹였습니다. 물론 아기는 다른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드디어 아기가 눈을 맞춰
 어느 순간부턴가 분유를 먹일 때 제 손을 잡는 아기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그 아기가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아기가 제 얼굴을 바라보며 저와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 아기는 크면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 아기의 감성 속에 제 모습은 `정(情)`으로 언제까지나 기억될 테니 말입니다. 그 아기가 사람들 속에서 교감하며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그 아기의 변화를 본 보모들이 그 이후로 저를 진빠빠라고 부르더군요. 아마 아빠 자격이 조금은 있다고 인정해주는가 봅니다.

 저는 이렇게 작은 변화 속에서 선교사로서의 보람과 주님 은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후원계좌 스탠다드차타드은행 225-20-435521
예금주: 성골롬반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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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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