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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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상)- 해발 4300m의 마을, 엘 알토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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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맞닿은 해발 4300m 고산 지대.
엘 알토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선교지다. 한 인디오 할머니가 양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300년 동안 스페인 식민지였던 볼리비아는 독립 후에도 크고 작은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수많은 인명과 국토 절반을 잃은 비극의 역사를 안고 있다.

 이국적 풍경 이면에는 기나긴 식민지 역사 안에서 모든 것을 빼앗겨 남미에서도 가장 낙후된 나라라는 그림자가 있다. 국민소득이 세계 122위로 중남미에서 최빈국에 속한다. 인구 100명 중 27명이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인구의 60가 케추아족과 아이마라 인디오 원주민인데 이들은 최빈국 볼리비아 안에서도 가장 가난하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밀려나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늘은 손에 닿을 듯 선명하고 가장 먼저 받는 햇살은 어지러울 만큼 쨍쨍하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알리마니산마저 동네 언덕처럼 코앞에 펼쳐져 있어 가깝게 다가온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낮은 곳에 살고, 한 뼘이라도 높은 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리잡고 살아간다. 이 높은 곳에서도 더 높은 하늘을 향해 올라간 달동네 해발 4300m 고산 지역을 오르면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선교지가 본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엘 알토(EL ALTO),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선교지다.

 엘 알토는 가난한 산동네 지역으로 도시에서 밀려난, 소외된 인디오 원주민들이 터를 잡고 살아간다. 알토에 산다고 하면 다들 우주인을 본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지며 "괜찮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알토는 볼리비아에서도 가장 위험한 우범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알토 원주민들은 가장 거칠고 배타적인 것으로 소문 나 있다.



 
▲ 주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는 김 수녀.
 
 
 사람들이 북적대는 대낮에도 소매치기가 활개를 친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사람을 에워싸고 금품을 털어간다. 수도자도 예외가 아니다. 외국인은 특히 그들의 목표가 되기 때문에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런 위험보다 내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했던 산은 바로 해발 4300m 고산에 적응하는 일이었다. 이곳은 산소가 부족해 나처럼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호흡장애를 많이 겪는다. 혈압이 높거나 심장이 약한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면 대단히 위험하다. 심한 두통과 호흡장애, 청각장애, 불면증에 시달리며 매일 코피를 흘리곤 한다.

 원주민들은 이런 자연 환경에 적응해 살 수 있도록 오랜 기간에 걸쳐 체형이 발달했다. 몸집이 크고 폐활량과 혈액량이 많아 고산 생활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가슴 구조가 역삼각형으로 타고나지 않은 우리 같은 외지인은 늘 마라톤 선수처럼 숨이 차게 된다.

 볼리비아에 오기 전 많은 이들이 고산병을 걱정해 줬는데 정작 고산 지역을 경험해본 일이 없는 나는 `사람 사는 곳인데 괜찮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내 자신감은 알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공항 출구를 빠져 나오는데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없었다. 걸어도 걷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마치 우주에 온 것처럼 몸이 붕붕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동료 수녀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구토를 하더니 그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나서야 고산병을 걱정해주던 지인들 말이 생각났다. 하룻밤 사이에 그대로 심장마비로 저 세상으로 갈 수도 있고, 혈압이나 호흡 곤란으로 쓰러질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섰다. 그렇게 한 달 한 달을 버텨나갔다. 하느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으니 살든 죽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맡겨드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고산 지역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에 오히려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본당 청년들은 외국인이 고산병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우리를 더 배려해주고 염려해줬다.

 가스가 떨어지면 무거운 가스통을 사서 날라줬고, 집 맞은 편 절벽 끝에 있는 쓰레기장까지 가서 쓰레기도 대신 버려줬다. 수녀원 마당 잡초를 뽑아주고 삽질을 해주고 벽돌도 옮겨줬다. 이들에게 무언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내가 거꾸로 이들의 사랑을 받고 또 받았다. 가까이 함께 하시며 나를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돌보심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열정을 다해 무언가 하려고 해도 고산증으로 금세 체력이 소진되기 때문에 특수한 환경에 맞게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그동안의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꾸고, 나의 계획과 욕심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이들이 아니라 바로 나를 변화시키고 깨닫게 해주시며 새로운 눈과 마음을 열어주셨다.

 사람들은 알토를 춥고 삭막한 곳, 거칠고 배운 것 없는 인디오들이 사는 우범지역으로 여긴다. 또 숨쉬기도 힘든 고산 지역이라서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꺼리지만 우리 산마태오본당만큼은 사랑과 배려가 넘쳐난다. 언젠가는 이 향기가 멀리 퍼져 나가 알토가 진솔한 사람향기 가득한 하느님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하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고산 지역은 오래 산다고 해서 적응되는 것이 아니라서 늘 위험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 내게는 오히려 하느님 은총이요 선물이기에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후원계좌 시티은행 622-00044-2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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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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