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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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하)- 뿔가(벼룩) 따위는 무섭지 않아!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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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토 어르신들은 외로움을 견디며 쓸쓸히 노년을 보내고 있다.
어르신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는 필자.
 

  주일 미사를 마친 후 동료 수녀랑 성체와 성수통, 기도서를 챙겨 환자 방문에 나섰다. 본당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 허름한 헛간처럼 보이는 집이었다. 작은 쪽문을 통해 들어가니 오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79살 할머니가 벼룩이 잔뜩 붙어 있는 너덜너덜한 소파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있었다. 커다란 페인트통에는 소변이 가득 차 있었고, 바닥에는 여기저기 대변이 말라붙어 있었다.

 할머니는 부엌도 화장실도 없고, 썩은 양파와 호박이 널브러져 있는 더러운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우리는 병자를 위한 기도를 바쳤고, 할머니에게 성체를 영해드렸다. 도대체 언제 이를 마지막으로 닦은 건지, 치아 사이에 오물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심한 악취 때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는 무척 오랫동안 방문을 기다린 것 같았다. 아이마라 인디오 부족어를 쓰는 할머니의 하소연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외로움과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쓸쓸한 표정이 한동안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며칠 후 다시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준비해 간 삼계탕과 과자를 드리고 함께 주모경을 바쳤다. 할머니는 "이제는 자식들이 나를 완전히 잊은 것 같다"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삶의 마지막 여정을 외로움과 눈물로 쓸쓸히 혼자 걷고 있는 알토의 어르신들 대부분은 들고양이를 벗 삼아 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걷기가 힘든 할머니, 눈이 어두워져 성당에 가고 싶어도 혼자 길을 나설 수가 없어 부축을 받아야 하는 할머니, 사고를 당했거나 지병이 있어도 치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고통을 참고 있는 가난한 할머니들이 너무나 많다.

 볼리비아에서 인디오 여성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고통과 희생, 차별을 감내해왔다는 것을 뜻한다. 할머니 얼굴에 깊이 팬 주름이 긴 세월 모진 고생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노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는 큰 숙제가 생긴 기분이었다.

 우연히 시작된 홀몸어르신 방문이 계기가 돼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
을 만들고 무료급식 식단을 짰다. 그런데 우리 본당에는 봉사자가 없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난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신이 어렵고 힘들기에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처럼 여겼다.

 본당 사목회장 부인은 봉사를 하루 해보더니 꽁무니를 뺐다. 결국 시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나와 동료 수녀 몫이 됐다. 하루 종일 말벗도 없이 혼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을 성당에 초대해 기도를 하고 음식을 나눴다.

 어르신들은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고, 나는 아이마라 부족어를 못 알아들으니 서로 동문서답을 주고받았다. 묵주기도로 모임을 시작하려 했는데 묵주기도를 할 줄 아는 어르신이 한 명도 없었다. 충격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곧잘 따라 하신다. 어르신들은 묵주기도를 "아름다운 기도"라며 좋아하셨다.

 할머니들을 한 분 한 분 살펴봤다. 표정은 고단해보였고 주름은 깊게 패 있었다. 눈에는 백내장이 생기고, 귀는 잘 안 들린다고 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어렵게 거동을 하면서도 기도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일찌감치 성당 옆 공터에 앉아 모임 시간이 되길 기다리고 있다.


 
▲ 어르신들이 글을 깨우치기 위해 연필을 꼭 쥐고 글씨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언어 공부도 시작했다. 눈이 침침해서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다. 깔깔 웃으면서도 제멋대로 나아가는 연필을 쥐고 온 힘을 다해 공부한다. 문맹률이 80가 넘는 엘 알토 어르신들은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른다. 항상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해 집으로 돌아가는 어르신들에게 싸드린다. 이제는 당연한 듯 음식을 싸갈 비닐봉투와 장바구니를 준비해 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오시면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말 못할 괴로움도 겪는다. 뿔가(벼룩)도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을 보내드리고 나면 나는 일주일 동안 뿔가의 밥이 된다. 뜯기고 물리다가 밤잠을 설치며 뿔가 사냥을 한다.

 약을 발라도 소용없다. 잡으려 해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결국 실컷 물어 뜯기고는 피가 날 때까지 긁는다. 진물이 나고 딱지가 앉아야 끝이 난다. 한바탕 뿔가와 전쟁을 치르고 나면 또 다시 어르신들을 맞을 날이 된다. 두려움에 떨게 되지만 모임 참석을 유일한 낙으로 여기면서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성당을 찾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뿔가도 무섭지 않다.

 선교사로 산다는 것은 때로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눈을 감고 걷는 것 같다. 때로는 인간적 두려움과 한계를 느끼며 한없이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늘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척박하고 낯선 땅에서 하느님께서 비춰주시는 한줄기 등불만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가야 하는 외길이다. 그래서 더욱 그분만을 바라보게 되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신앙과 믿음의 좁은 길이다.


후원계좌  시티은행 622-00044-252-01
                예금주 : 김효진(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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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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