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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에필로그)- 가깝지만 먼 라파스와 알토 사이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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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에 참례한 아이들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 주일마다 봉사자들과 감식을 준비해 내놓는다.
 
 
   얼마 전 거금을 들여 빔 프로젝터(이미지나 동영상을 스크린에 비추는 기계)를 샀다. 텔레비전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작은 문화 혜택이나마 제공해주고 싶어서다.

 곧 성당에서 `산마태오 시네마 극장`을 열었다. 아이들은 영화 `부시맨`에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콜라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신기해하던 부시맨들처럼 처음 보는 기계 앞을 떠날 줄 모른다.

 영화는 첫 개봉부터 인기가 높았다. 단 한 명도 집에 가는 아이가 없었다. 모두들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영화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영화뿐 아니라 교리교육과 피정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랫동네 라파스로 내려가면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극장과 공원, 놀이시설들이 있다. 하지만 알토 주민들은 부자들이 사는 아랫동네에는 가지 않는다. 아랫동네 부자들 또한 알토는 척박하고 위험한 곳이라고 여겨 절대 올라오지 않는다.


 같은 볼리비아인데도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것 같다. 언어와 문화 차이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깊은 골이 느껴진다.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못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두 계층 사이에 가로 놓인 장벽은 마치 성경에서 부자와 라자로 비유에 언급된 큰 구렁텅이처럼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 높고도 깊다.


 가진 자들은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모은 돈을 내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불만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가난한 사람을 두고 능력이 모자라고 게을러서 부자가 되지 못했으니 업신여김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深淵)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에게 가진 것을 조건 없이 나줘 주는 인간애를 발휘할 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인간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의 몸과 피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는 부유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을 건너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부자의 많은 재산은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눌 때 비로소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 본당 아이들은 너무나 가난하게 살고 있다. 아끼는 것조차도 배부른 여유라는 것을 내게 가르쳐준다.

 선교지에서 처음 맞이한 예수 성탄 대축일에 있었던 일이다. 청년들이 우유 두 봉지를 사달라고 부탁하기에 사줬다. 그들은 우유를 큰 들통에 붓더니 나머지 공간을 수돗물로 가득 채운 후 설탕과 계피가루를 넣어 팔팔 끓이고 있었다.
 성탄미사를 마치고 모두들 자리에 앉아 들통에 가득 담겨있는 물에 탄 우유를 나눠 마셨다. 물에 탄 우유는 마치 세포분열을 하는 것처럼 아무리 퍼마셔도 줄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 기적처럼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는 풍성한 나눔이었다면 얼마나 기쁘고 뿌듯했을까. 그 싱거운 물탄 우유를 마시겠다고 단 한 명도 집에 가는 이가 없었다.

 그날부터 아이들에게 나눠줄 간식에 대한 걱정이 시작됐다. 적어도 미사에 참례하는 아이들은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중 라파스에서 한국 상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아이들에게 나눠주라며 초코파이와 빼빼로를 비롯해 한국 과자들을 상자째 보내주셨다.

 개신교 신자인 사장님은 "어느 날 기자들이 `장사가 잘되도록 기사를 내줄테니 기부를 하라`고 찾아왔는데, 문득 알토에서 선교하는 수녀님들 생각이 났다"며 이왕 기부를 할 거면 수녀님들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다고 했다.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여주시는 하느님께서는 개신교 신자 마음까지도 움직여 내 고민을 해결해주셨던 것이다. 가깝지만 먼 라파스와 알토 사이가 한걸음 좁혀진 느낌이었다.

후원계좌 시티은행 622-00044-252-01
              예금주 : 김효진(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맑은 알토 아이들.
 

 
▲ 아랫동네 부자들은 알토는 척박하고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해 절대 오지 않는다.
필자가 사는 알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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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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