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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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케냐(중)- 다양성 안의 보물을 찾기 위해

심유환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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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맑게 웃고 있는 난민캠프 어린이들.
 
   "봉주르!"(안녕하세요!)
 주일 두 번째 미사를 힘찬 프랑스어 인사로 시작했습니다. 썰렁한 난민 신자들 반응을 보고나서야 `아차 이곳은 남수단 딩카족과 누에르족이 많은 곳인데 내가 무슨 인사를 한 거지…`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콩고, 르완다, 부룬디 등 프랑스어권 난민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고 바로 두 번째 미사를 봉헌해서 그만 헷갈린 것입니다. 이곳은 많은 언어가 섞여 있습니다. 미사는 영어로 집전하지만 부족과 나라에 따라 어설프게 몇 마디라도 그들 언어로 인사를 합니다.

 유학 생활 때나 타지에서 생활할 때 가끔 한국어를 들으면 기뻤습니다. 그 기쁨을 알기에 전쟁과 폭력을 피해 그리운 고향을 등지고 온 난민들에게 그들 언어로 인사를 하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외국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면서 어설픈 발음이라도 열심히, 씩씩하게 인사를 하면 그들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납니다.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다시 아랍어로 인사를 하고 미사를 시작했습니다. `인사는 실수했지만 어제 밤을 새워 가며 공들여 준비한 강론과 비장의 무기로 딩카어 농담을 준비했으니 괜찮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히잡을 쓴 무슬림 소녀들이 쑥스럽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무슬림들이 알게 되면 큰일이었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무슬림 공동체에 끌려가 해코지를 당하면 어쩌지! 신부가 순진한 무슬림 아이들을 꾀서 미사에 데려가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나를 공격하면 어쩌지!` 순식간에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환한 인사를 건네는 무슬림 아이들에게 미소도 못 짓고 제단으로 돌아와 성체를 분배하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중에 무슬림인 난민센터 직원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아마 비를 피해 아이들이 성당에 들어왔는데 신기한 외국 사람이 있었으니 인사를 했을 뿐일 것이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난민캠프에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섞여 있어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할 때가 많습니다.

 카쿠마 난민캠프에는 16개국에서 온 난민 13만 명이 살아갑니다. 많은 이들이 무슬림 신자이고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신자를 비롯해 전통 종교를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세계 난민의 날 행사가 열릴 때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가 있습니다.

 다양함은 좋지만 때로는 다름 때문에 긴장이 고조되고 폭력 사태도 일어납니다. 단일 국가 신자들만 있는 난민성당 안에서도 부족에 따라 또 부족 안에서 작은 씨족 계열에 따라 반목과 갈등이 자주 일어납니다. 다양함이 선물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난민들 간 문제뿐 아니라 수백 년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케냐 투루카나 부족들과 난민들 갈등도 심각합니다. 케냐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곳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투루카나족들 눈에는 난민들이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들 땅에 케냐 정부와 UN이 일방적으로 캠프를 설치해서 땅을 빼앗겼다
고 생각합니다. 부족은 기아와 가난으로 허덕이는데 난민들은 지원을 받는 모습을 보며 상처를 주고 더 미워합니다. 결국 폭력 사태로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자주 발생합니다.

 제 눈에는 다들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 자본의 구조나 거시적인 불의는 보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끼리 이렇게 싸우며 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곳의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지 생각해 봅니다. 또 난민들끼리, 난민과 이곳 부족이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 지 항상 고민합니다. 하나의 시도로 기쁨나눔재단을 통해 도서관을 만들어 난민들과 투루카나족들이 함께 사용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에티오피아 출신 정교회 사제들은 난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 사제관에서 필자(가운데)와 함께 있는 모습.
 

 처음 난민캠프에 와서 어려움을 겪으며 마음고생을 찐하게 하고 있을 때 한 에티오피아 난민이 집으로 저를 초대했습니다.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진 그는 난민캠프에서 만난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생활하며 서로 지지하고 위로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힘들 때면 그곳을 방문해서 에티오피아 전통 방식대로 커피를 마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들 환대 덕분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서로 다름 안에서 배우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이 활동하시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희망을 봤습니다.

 어제는 에티오피아 출신 정교회 사제들이 점심식사에 초대해줬습니다. 풍족하지도 않고 그리 맛있는 음식도 아니지만 그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교회에서 파견됐지만 저처럼 어떤 단체 책임자로 온 게 아니라 난민들과 함께 살며 에티오피아 난민들에게 위안을 줍니다. 임시 막사에서 두 분이 침대를 하나씩 놓고 사는데 그들 사제관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습니다.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이들에게 내가 가르치려 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도움을 주려 하지 않고, 다른 것에서 무엇인가를 배우려 노력하며 하느님을 발견한다면 진정한 평화와 다양성 안에서 일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말하셨듯이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오늘도 이곳 카쿠마 난민캠프에서 다양성 안의 보물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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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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