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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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칠레(5)3년 정든 시골 본당 뒤로한 채 ‘산티아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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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간 사목했던 본당이 있는 마을 전경. 새로운 임지로 가는 길, 헤어짐과 만남 역시 선교사의 삶의 일부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사진제공=황성호 신부

 정들었던 곳을 떠난다는 것! 자기에게 익숙한 것을 두고 떠난다는 것! 부모와 가족, 친구들을 떠난다는 것! `떠난다`란 말에는 아쉬움과 슬픔, 앞으로 있을 그리움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 칠레로 향했을 때,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언어과정을 끝내고 칠레로 돌아올 때도 많은 생각이 떠올랐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는 칠레에서 어디로 떠나는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3년간 살았던 리아츄엘로(Riachuelo)본당을 떠나야 했습니다.
 
 현재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지원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칠레에서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활동 주 무대는 수도 산티아고입니다. 대부분의 활동 지역이 빈민가인데, 이제 골롬반 선교회도 사제가 많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은 이해하지만, 갑작스럽게 이곳 리아츄엘로 본당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당황스럽기도 했고, 작은 말다툼도 있었습니다.
 
 결국 2013년 7월 말에 철수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모든 서류 절차를 끝냈고, 새로 부임할 신부와 함께 인수인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시골 작은 본당이고 재정은 늘 부족했지만, 새로 부임할 신부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줬습니다.
 
 인수인계 과정 중에 오소르노에서 활동하는 선교사 신부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황금만능주의의 영향일까요, 본당 재정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보니 오소르노교구 신부들이 리아츄엘로 본당에 들어와 활동하려는 것을 꺼린다는 것입니다. 인심 좋은 작은 동네이지만, 좋지 않은 소문이 무성해 사목하기 쉽지 않은 곳이라네요.
 
 한국이나 칠레나 어떤 본당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당에 대한 어떤 기준들이 사목자들의 열정과 순수함보다 앞서서는 안 되겠죠. 하느님의 사업을 하는 우리 사목자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볼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본당 신부님은 한국 신부님이십니다
 7월까지 모든 인수인계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열두 개의 공소를 돌면서 마지막 미사를 했습니다. 모두 아쉬워했습니다. 매달 아홉 명의 신자가 미사를 참례했던 야알코공소 공동체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습니다. 한 20여 명의 신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 다들 그럽니다.
 
 "신부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어딜 가더라도 건강하시고, 하느님 축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신부님의 인내와 받아들임에 감사합니다."
 
 저녁 식사 후 돌아오는 길에, 하느님과 공소 신자들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공소 신자들이 없었다면,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푸트리우에공소 미사를 했습니다. 이 공소는 규모도 크고 역사도 오래된 곳입니다.
 
 그리고 세사르(Csar)라는 교리교사가 있어서 공소 아이들이 첫 영성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미사 후에 세사르와 대화하는데, 분위기가 침울했습니다. 세사르가 "신부님이 왜 떠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합니다.
 
 떠나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았나 봅니다. 오랜 시간 리아츄엘로 본당과 열두 개의 공소사목을 담당했던 이들은 외국 선교사 신부님들이셨습니다. 독일, 폴란드, 미국 등에서 온 수도회 신부님들이셨죠. 그리고 최근 5년 동안 한국 신부들이 사목했는데, 그 열정과 순수함, 언어의 어려움에도 인내하고 함께 사목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나 봅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 했던 공소회장 모임을 마지막으로 하는 날이었습니다. 공소회장 대표인 돈기도(Don Guido)씨가 저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모든 공소 이름이 새겨진 기념패였습니다. 그리고 그 패에는 아름다운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당신의 열정적인 사목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이해심과 깊은 사랑에 또한 감사드립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본당 신자들과 함께 산 것뿐인데, 이렇게나 큰 선물을 주다니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부족함과 몰이해로 무심하게 지나쳤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공소 회장들을 모두 집에 모셔다 드린 후, 짐 정리를 하는데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도 리아츄엘로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나 봅니다.
 
 다프네와 디에고의 울음!
 리아츄엘로 본당에는 일곱 명의 복사 아이가 있습니다. 첫 영성체를 끝낸 친구들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서로가 복사를 서겠다고 해서 복사가 된 아이들입니다. 복사 아이 중에 대표가 있습니다. 디에고라는 친구인데, 거의 5년 동안 한국 신부들과 잘 지냈던 친구이고 그 부모와도 좋은 관계로 지냈던 가족들입니다.
 
 짐정리를 하고 있을 때 디에고가 찾아왔습니다. "신부님! 떠나는 거예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디에고의 선물을 사 두었습니다. 떠나게 됐다고 말한 후,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선물을 가지고 와서 디에고에게 주려는데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디에고가 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든 디에고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참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디에고가 정이 많은 친구인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디에고를 다독거려주고 선물을 건넸습니다. 선물을 받으면서도 계속 울었고, 선물을 들고 성당을 나가면서도 계속 울었습니다. 복사 대장이라고 타박도 주고 대화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가끔 한국말도 가르쳐주었는데….
 
 리아츄엘로 본당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는 날이었습니다. 본당 신자들은 물론 공소 신자들도 많이 참례했습니다. 이날 미사 중에는 14명의 젊은 친구들의 견진성사도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 미사 집전을 하셨고, 골롬반 선교회 지부장 신부도 함께했습니다. 주교님을 비롯한 모든 신자들이 저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친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프네라는 복사로 저에게 스페인어 발음을 가르쳐주었던 친구입니다. 미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성당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남미의 7월은 겨울인데 감기에 걸려 미사에 참례할 수 없었다고 다프네가 말합니다.
 
 미사 후, 준비한 선물을 다프네에게 주었습니다. 이 선물은 뭐냐고 묻습니다. 아직 제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나 봅니다. 10여 분 동안 다프네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했습니다. 책 많이 읽기, 공부 열심히 하기, 성당 복사 빠지지 않기…. 다프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황해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프네가 울면서 그러네요. "신부님 말씀 절대 잊지 않을게요."

값진 소득
약 3년 동안 칠레 남부 오소르노교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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