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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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칠레(6)환경 변화는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주님 부르심

황성호(광주대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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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함을 벗어난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두렵지만, 더 성장하고 주님을 만날 또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80일간 휴가를 마치고 칠레로 돌아왔습니다. 곧바로 라 핀타나(La Pintana)에 위치한 성 토마스 사도본당 사제관으로 이사했습니다. 시골 본당에서 썼던 물건은 대부분 두고 와서 짐은 책과 옷가지가 전부였습니다. 정리를 대충 끝낸 후, 본당 크리스 신부와 인수인계를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본당 흐름과 라 핀타나라는 동네의 특성 등에 관한 것이었고,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참 간사한 것 같습니다. 시골 본당에서의 삶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이 새로운 삶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무더운 날씨, 각박한 인심, 위험한 동네, 그리고 사제관의 철조망 등…. 새로운 환경에 몸과 마음이 불편함을 호소합니다.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이전의 익숙함을 고수할 것이냐라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안주하려고 하면 그 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찾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안주하고 새로움을 두려워한다면 내적 성장은 멈춘다는 것입니다.
 
 제가 칠레에서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두렵고, 어렵다고 새로운 것을 찾지 않고 안주한다면 나에게 오는 큰 기회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과의 만남, 동네 사람들과의 친교, 그 지역의 역사적인 특성에 대한 관심 등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를 통해 조금 더 지역 공동체에 다가갈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더 배울 수 있고, 더 성장할 기회가 되지요.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하느님께서 작은 존재인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 기회가 됩니다. 비록 몸과 마음은 새로움이라는 불편함에 조금 힘들겠지만, 주어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지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전의 것들을 내려놓는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그 기회를 위해서….
 
 다시 시작하는 삶. 라 핀타나에서 맞은 성탄 그리고 진짜 아기 예수님!
 본당과 공소 하나. 성 토마스 사도본당과 파드레 우르타도공소입니다. 본당과 공소를 묶어서 선교하고 사목했던 시골본당과는 달리 라 핀타나의 두 공동체는 모든 것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서로 불편해하는 것이 오래된 것 같습니다.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크리스 신부는 본당 성탄 미사를, 저는 공소 성탄 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 아기 예수 역할을 맡은 일곱 된 토마스와 본당 어린이들.
 
 한여름에 맞는 성탄이라 한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구세주 맞을 준비를 다들 기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소에서는 구유에 쓸 성상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린아이들이 갖가지 의상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대 옆 바구니에 천을 깔아 구유도 준비했습니다. 어떻게 성탄 미사가 봉헌될지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이 입장하고, 갑자기 공소 회장 안드레아가 그의 일곱 달 난 아들 토마스를 유모차에서 꺼내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그 아이를 구유에 눕히는 것입니다. 미사를 하는 동안 내내 걱정이 앞섰습니다. `토마스가 울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에 미사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걱정도 잠시, 토마스는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는 듯, 계속 웃고만 있었습니다. 다행이다 싶어 신자들에게 구유 경배를 하자고 했습니다. 100여 명의 신자들이 경배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아이의 볼에 입맞춤하며 기뻐했습니다. 미사 후 신자들과 간단한 다과를 나누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진짜 살아 있는 아기 예수님을 오늘 만났으니까요.
 
 사제의 자격은, 선교사의 자격은?

 다행입니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이 컸는데, 신자들과 재미있게 성탄 미사를 드리니 힘이 절로 나는 것 같았습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곧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칠레에 왔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나`의 진실한 모습을 찾는다는 것과 매일 독서와 복음을 스페인어로 쓰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제로서 진실하게 사는 것일까? 그리고 선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교황청 성직자성에서 1994년 `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을 내놓았습니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생활에 의해 반영되는 증거는 사제에게 그 자격을 부여하고 또 그의 설교를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되게 한다. 사제 자신의 신원을 생활화하고, 애덕을 실천하는 이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문화적 준비나 치밀한 조직은 그저 환상이 되고 말 것이다."
 
 "사제의 자격은 생활에 의해 반영되는 증거를 통해서 주어진다"는 이 말씀은 사제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에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의 자격은 바로 그 사람의 삶의 모습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 관계성, 애틋한 마음 등에서 그 사람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해외선교사로서 살아가는 이들도 그렇습니다. 선교의 동기, 현지 원주민들을 향한 순수한 마음, 가장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 그리고 병자를 찾아 나서려는 조건 없는 봉사자 모습이 선교사의 자격입니다. 가난한 병자를 만나 위로하고 도움을 준 후 집으로 돌아와 홀



가톨릭평화신문  201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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