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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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멕시코(2) “신부가 미신 따위에 질 수 있나, 아파도 털고 일어나야지”

김형준 신부 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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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 신부가 공소 미사 후 자신을 둘러 싼 아이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고 있다.

공소 방문을 다니면서 제일 정감 가는 공소가 하나 있다. 본당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있어 주일마다 방문하는 곳이다. 뭐랄까, 소를 키우는 농장들 사이에 자리한 공소로 예전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에 나오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말이나 마차를 타고 성당에 오는 이들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도보로 자전거로 혹은 버스를 타고 온다.

 그리고 이 지역은 개신교 신자, 그 중에도 여호와의 증인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본당과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사제 방문이 거의 없었던 곳이어서 다른 종교 교세가 확장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신자들의 종교 신심은 역시 상당히 기복적으로 보인다. 물론 내가 멕시코 사람들의 정서를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상당히 기복적이다. 이런 문제에 또 어찌 적응해야 할까.

 

 시련이 와도 버티고 또 버티고

 며칠 차를 타고 공소에 방문하는 중 차에 뱀이 한 마리 올라왔나 보다. 차에 신자들 태우고 다니는 경우가 있어 차 뒤에 나무 의자를 싣고 다니는데, 길이 좀 험하다 보니 나무 의자가 쓰러져 뱀이 3등분 되어 죽어 있었다. 신자들은 나쁜 징조라고 수군거렸다. 나는 별거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몇몇 신자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또 며칠 전에는 미사 중에 고양이가 나와 제대 앞에 앉았다. 신기한 건 도둑고양이가 왜 그 많은 사람 틈을 비집고 제대 앞까지 왔느냐는 건데, 사람들은 이것도 나쁜 징조라고 했다.

 `그럼 좋은 징조가 도대체 뭐가 있나`하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 날 아침에 몸 상태가 이상한 것이다. 말라리아처럼 몸이 아프고 열이 나는 걸 봐선 뎅기열인 듯했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가 아파도 누워 있을 수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가뜩이나 기복적 요소가 많고 운, 재수 등을 너무 과하게 믿고 있는 신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몇 가지 불길한 징후로 사제가 아픈 게 돼 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에 아픈 몸을 힘겹게 일으켰고, 아무 일 없는 듯 신자들 앞에 나섰다.

 그리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럴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지 않은가.`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나는 주님께 `당신의 지혜와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청하곤 했다. 삶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우리가 하느님께 청할 수 있는 건 "이 어려운 상황이 빨리 지나가도록 청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가 청할 수 있는 건 그분의 지혜와 용기다.

 우리는 삶의 십자가가 무겁고 힘겨워 벗어 버리고 싶다고 청하지만, 사실 하느님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이럴 수 있게 청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나의 신앙생활의 근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잘 버티며 잘 보냈다. 버티기는 잘하는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뭐 사제관 생활이 버티기의 일종이긴 하지만…. 다행히 다음 날 생각보다 훨씬 많이 몸 상태가 회복됐다.

 

 미리 걱정하지 마라

 이곳 공소 신자 대부분은 세례를 받았지만 첫영성체를 안 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교리라는 것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도 한 공소에 10명 남짓 모였는데, 성호를 제대로 그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냥 신부가 한 달에 한 번 미사하러 찾아오면 의무감인지 호기심인지 아니면 옆집 사람들이 가자고 해서 따라온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들에게 무슨 강론이 필요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어 미사 중 강론은 접고 간단한 교리로 대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내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장점(?)을 이용해 함께 공소에 방문한 백발이 희끗희끗한 자매님에게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5분 정도에 걸쳐 간단한 교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하느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 그는 "말주변도 없는 내가 어찌 당신의 계명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답을 했다. 그리고 하느님은 "무엇을 말할까, 어떤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답하셨다.

 자매님은 조금 망설이더니 용기를 내어 교리교육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자매님도 용기가 생겼는지 30분간 열강을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괜히 시켰구나."

 다음 공소로 가면서 이야기했다. 다음 달부터 이 공동체는 강론 대신 간단한 교리교육만 하자고, 또 그건 내가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까지 준비할 시간이 요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준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스페인어가 마음처럼 되질 않아 답답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자 하는 성의가 아닐까 싶다. 이곳 신자들이 신앙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을 알고, 내 마음, 생각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는 일도 그렇다. 이를 통해 나 역시 하느님을 마음과 생각과 목숨과 같이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은 어떤 말이나 강론보다 중요하다. 선교에 필요한 언어를 익히는 데만 치중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또 다른 공소가 보인다. 이곳에서도 미사와 신자 교리교육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늘 하던 것처럼 미사 후 아이들 머리에 손을 얹고 하느님 축복을 청할 것이다.

 "이 아이들을 통해 당신의 교회를 지켜 주소서."

 제게 용기를 주세요


▲ 멀리 계신 부모님이 늘 마음에 쓰이지만, 주님께 용기를 청하며 나의 일을 묵묵히 할 것이다. 사진은 공소



가톨릭평화신문  201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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