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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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동양에서 온 투명인간 수녀

볼리비아 <2> 김성희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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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에게 교리 교육을 하는 필자.

외국 삶에서 가장 큰 장벽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언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언어로 생기는 오해와 알아듣지 못해서 절절히 느낄 수밖에 없는 답답함으로 인해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못 알아들을까 걱정하여 대화를 꺼리게 되기도 하고 불안과 초조감에 책을 놓지 못하기도 합니다.

볼리비아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교구 주교님의 생신 미사에 초대를 받고 서점에 가서 카드를 샀습니다. 마중 나오신 주교님께 카드를 드리려는데 함께 간 볼리비아 자매가 카드를 보더니 이 카드는 ‘장례 카드’라는 것입니다. 카드 뒷면에는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란 풀밭에 이 몸 뉘어 주시고…’였고 필기체로 쓰인 제목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였습니다. 장례 문화를 모르는 저는 생신날 주교님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릴 뻔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주교님께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언어와 문화 장벽

이곳에서 의사소통이 안 될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어 이외에도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따뜻한 눈빛과 미소를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서로 동문서답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따뜻한 눈빛과 미소는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줍니다. 그래도 언어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걸리는 기나긴 마라톤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가장 적응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문화는 이곳의 ‘시간 개념’입니다. 마치 약속은 지키지 말라고 있는 것처럼 한 시간 이상 늦는 것은 아주 양호한 것이고 보통은 아무 연락도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오후 3시 미사면 신부님은 4시에 오십니다. 신부님은 신자들이 늦게 오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신자들은 신부님이 늦게 오기 때문에 우리도 늦는 거라고 하며 서로 탓을 돌립니다. 그래서 교리 시간에 ‘핑계’도 게으름의 하나이며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절대 못 믿겠다는 표정입니다.

신자들도 남의 물건을 훔칠 기회가 있는데도 훔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교리교사 피정 때 쓸 간식거리를 보면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는 행동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구약시대 모세의 십계명이 정말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처음 본당에 왔을 때 본당 신자들은 저를 봐도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절대로 먼저 다가와 말을 걸지도 않습니다. 이들에게 저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할 때에도 앞자리에 앉은 이들이 뒷줄까지 일부러 와서 평화인사를 하지만 저는 피해 갑니다. 이들이 인사를 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서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저 또한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도 한몫했고 낯선 동양인 수녀에 대한 이들의 경계심 못지않게 저 또한 이들을 경계하고 긴장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들을 받아들이기까지 이들이 저를 받아들이기까지 제가 갖고 있던 많은 고정관념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들은 “잘못했다.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습 살아남는 방편이었다고 하는데 고맙다는 인사는 곧잘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약속해 놓고 지키지 않아서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는 넘어가 버립니다.

이곳의 상거래 문화도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판매자가 왕’입니다. 마치 “네가 필요한 물건을 내가 파는 것이니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입니다. 깎아 달라거나 조금 더 달라고 하거나 하면 안 판다면서 봉지에 담던 물건을 도로 쏟아 놓는 것을 자주 봅니다. 특히 과일을 살 때도 골라서 담는 것을 아주 기분 나빠 하면서 돈을 더 내라고 합니다.

미국이 마약으로 규정한 코카 잎도 이들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알토의 모든 사람이 코카 잎을 먹습니다. 이들은 코카 잎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도 하고 무릎에 붙이며 만병통치의 특효로 쓰고 있습니다. 아플 때 고통을 덜어주는 코카 잎은 3000년 동안 내려오는 이들의 문화입니다. 고산으로 인한 두통과 배고픔을 잊게 해주는 코카 잎은 이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모임 때마다 성당에서도 코카 잎을 씹습니다.

 
 

▲ 성당을 향해 가는 신자들.
 
학교를 운영하고 계신 스페인 수사님들은 모임 때마다 우리에게 알토에서 살아가는 법을 이것저것 알려 주십니다. 알토에는 알토만의 운전법이 있다며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우리에게 이곳의 교통 실태를 가르쳐 주십니다. 운전할 때는 무조건 끼어들기, 절대 양보 안 하기, 역주행은 기본이고 장날에는 중앙 대로로 가면 안 된다고 충고해 줍니다. 수사님들은 골목골목 빠른 뒷길을 모두 섭렵하고 있습니다. 알토 지역 수도자 모임에는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페루, 칠레 등 다양한 국적의 사제 수도자들이 모입니다.

마침 모임하는 날이 볼리비아 독립기념일이었습니다. 스페인 수사님들은 ‘축 독립’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케이크를 사오고 볼리비아 수녀들은 축하 속에 맛있게 케이크를 먹으며 고맙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라면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 사람이 우리에게 광복절을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사오고 우리는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축하를 받고 고마워할 수 있을까요?


교회 안에서 선교사의 참 의미

온통 다른 것 투성이인 낯선 이곳에서 저 또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익히고 배워야 했습니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선교사의 존재를 무조건 베풀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



가톨릭평화신문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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