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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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 <4> 김성희 수녀(하느님의 딸 수녀회)

꿈이 없던 아이들, 무지개 공부방에서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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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볼리비아 알토 지역의 자연 환경에서 살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삽화 단편 ‘나무를 심은 사람’의 배경이 되어 주었던 오지 마을이 떠오르곤 합니다. 버려진 땅에 물 한 방울 나오지 않고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죽이며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는데 그 모습이 이곳 알토 지역과 닮았습니다.

일 년 내내 우박이 쏟아지고 모진 흙바람이 부는 황량한 이곳은 지금도 거칠고 메마르고 살인과 폭력이 일어나는 배타적인 곳이지만 나무를 심듯 이곳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계속해서 하느님 사랑을 심고 가꾸어 나간다면 이곳도 언젠가는 사람 살기 좋고 이웃끼리 서로 웃음을 나누며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날이 꼭 오겠지요.


 공부방 꾸미다 안면 마비가…

이 지역의 아동들은 부모가 생계를 위해 집을 비우는 사이 방치되어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큽니다. 아이들만 두고 문을 잠그거나 장사를 하기 위해 길바닥에 좌판을 벌이면 아이들은 온종일 길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조금 큰 아이들은 장사를 돕거나 심부름을 하며 지냅니다. 알토의 아이들은 방과 후 달리 갈 곳이 없습니다. 한 가정에 보통 5∼10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한 부모 가정이나 가정 폭력에 쉽게 노출되어 있거나 부모에게 버려진 자녀들이 많습니다.


어린이들은 사랑을 먹고 크는 존재들이지요. 우리는 어린이들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닮은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베풀 줄도 알듯이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보살피는 것이 이곳에서 저희의 소명입니다.

지난 봄부터 이 지역 아동을 위한 방과 후 공부방을 준비하기로 하고 공부방 이름을 ‘무지개’로 지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언약의 증표가 되어 주었던 무지개가 이곳의 어린이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하느님의 약속이 되어 어린이들의 미래를 찬란히 밝혀주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답니다.

우선 낡은 교실과 부엌, 화장실, 뒷마당 보수공사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일꾼을 쓰지 않고 신부님과 함께 힘을 모아 문짝을 고치고 새는 지붕을 바꾸고 교실마다 깨끗이 페인트칠을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자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새 건물이 새로 지은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 공부방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수도자.
 
페인트칠을 도맡아서 하던 동료 수녀는 유독성 페인트 냄새로 인해 눈썹이 빠지고 피부가 부풀어 물집이 생기고 잇몸이 녹아내리고 말았습니다. 계속해서 속이 울렁거렸는데도 고산 증상인가 생각하며 넘어갔답니다. 결국 안면근육 마비가 오고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하게 되었지요. 날씨가 너무 춥다고 문을 닫고 공기가 모자란 해발 4300m의 고산에서 페인트칠했던 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온종일 수십 개의 의자와 책상을 서너 번씩 칠하면서도 독한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해보지 않던 일을 열정 하나로 달려들어 하다 보니 때때로 탈이 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공간이 아늑하게 바뀌어 가는 모습에 뿌듯함이 앞섭니다. 공부방 시작하던 날 주교님께서는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며 교실 구석구석 축복해 주시며 기뻐하셨습니다.


▲ 공부방에서 수업에 열중인 아이들. 모든 것이 열악한 볼리비아에서 교육은 아이에게 꿈을 주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다.

 
꿈이 피어나는 무지개 공부방

수업 첫날 아이들은 레고 블록 앞을 떠나지 못하고 이런 장난감은 처음 본다며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덧셈 뺄셈 문제지를 푸는 데는 한참이 걸립니다. 고학년인데도 세 자리를 넘어가면 헷갈립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무료가 아니므로 책이 없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적어주는 교과서 내용을 받아 적다가 수업이 끝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미술 시간이 없어서 아이들은 공부방에서 하는 미술 수업을 가장 좋아합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맘껏 표현하고 만들며 붙이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세상을 향한 꿈을 심어 줍니다. 매주 금요일은 문화의 날입니다. 이날은 읽고 싶은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푸짐하게 간식도 먹으며 맘껏 놀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놀이 문화가 없는 알토의 아이들에게 ‘무지개 공부방’은 아이들만의 세상이 되어줍니다.

공부방에 오면 가장 먼저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처음에 아이들은 비누 사용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비누가 그만 이리 튀고 저리 미끄러지다가 물에 빠진 비누가 퉁퉁 불어나고 물이 넘쳐 바닥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이제는 새롭게 들인 습관에 익숙해져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고 의자를 정리하는 간단한 일들은 척척 합니다. 어린이들은 기초가 중요합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쉽게 받아들이고 배워가며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볼리비아 아이들의 유년기는 일찌감치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부모를 도와 돈 버는 일을 돕거나 장사를 거들거나 가사 일을 맡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부모의 중요한 노동력이 되어줍니다. 그렇게 자란 이곳의 청년들은 공부와는 점점 멀어지고 맙니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공부하는 것이 큰 희망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교육을 바라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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