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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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 <5>

김성희 수녀 (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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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수녀님,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해마다 한국인 사제 수도자 남미 선교사 모임 ‘아미칼’에 가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어떻게 그런 나라에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어떻게 그렇게 높은 해발 4300m 고원에서 사느냐며 알토 지역은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괜찮으냐고 물어봅니다. 저 또한 다른 선교지역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은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지진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수도복을 입고 활동하는 것이 위험한 국가인데 괜찮은 건가”하고요.
 

 
같은 볼리비아 안에서도 산타크루스는 무척 덥고 벌레가 많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 더위를 견디고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알토는 일 년 내내 춥지만 그래도 더운 것 보다는 추운 게 낫지”라고 생각하지만 또 반대로 산타크루스에서 선교하시는 신부님은 제게 “어떻게 그렇게 높고 추운 곳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40년 동안 남미 선교사로 사신 신부님은 당신은 고산 지역엔 근처도 못 가신다며 한번은 해발 3000m의 고산 지역으로 소임을 받고 갔는데 고산 증상 때문에 일주일 만에 철수했던 경험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샤워하는데 온몸의 구멍에서 피가 나오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의사는 죽기 싫으면 당장 하산하라고 했고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그 선교지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해주시며 항상 고산병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십니다.

저마다 자신의 선교지에 가진 애정 때문에 내가 사는 선교지가 제일이라고 여깁니다. 나눔을 하다 보면 이구동성으로 어디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바로 그곳이 각자에게 제일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나에게 가장 좋은 곳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이곳 알토 사람들은 그렇게 모든 한계를 뚫고 하느님의 섭리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이들이 더 소중하고 이들에게 저를 보내시고 저에게 이들을 보내주신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드리며 이곳의 투박한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이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이들이 있으며 우리가 이렇게 마음으로 함께 하는 곳에 하느님께서 또한 함께 하시기에 그저 모든 것 그분께 맡기고 살아가지요.


성당에 찾아온 밤손님

그런데 올해는 저희 성당에 밤손님(?)이 자꾸 다녀가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성당 뒷담에 붙어 있던 교리실 건물이 허물어지면서 그 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들은 창문을 깨고 들어와 교리실 문을 열다가 실패하자 열쇠 구멍마다 접착제를 넣어 굳혀놓았습니다. 접착제를 넣는 이유는 문고리를 깨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날은 교육관 부엌 나무문을 자르고 가스통을 떼어갔습니다. 가스통이 없어지자 청년들이 울음을 터뜨립니다. 워낙 가난한 빈민촌이고 우범지역이다 보니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곳에서는 가스통도 귀한 생필품이니 가져가서 팔면 돈을 받습니다.

급기야 성당 제의실에 들어와 기타와 스피커를 가져가는 바람에 미사 때마다 반주도 없이 성가를 부르게 됐습니다. 침투 경로를 살펴보더니 성당 도둑 중에는 분명 아주 어린 아이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가서 성당 문을 열었으니 분명 어른 도둑이 시켰을 거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말에 마음이 아프지만 다시는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관과 성당을 누비며 점점 대범해지는 도둑을 잡을 길은 없습니다. 신자들은 밤에는 절대 나가지 말라며 도둑과 마주치면 이들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 문을 열지 말라고 합니다. 경찰을 부르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오히려 경찰이 다 털어가는 수가 있으니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성당 청년들이 걱정하는 눈빛으로 달려와 대책 마련에 나섭니다. 뾰족한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성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저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입니다. 도둑을 잡는 대신 허물어진 뒷담 보수공사를 하고 철조망으로 세네 줄 칭칭 감았습니다. 이렇게 해놓으니 밖에서 보면 마치 감옥(?) 같습니다.

이곳 고산 지역은 특히 눈 치료가 시급한 이들이 많습니다. 해발이 워낙 높다 보니 강한 자외선과 건조한 날씨 탓에 눈이 녹는다고 할까요. 사람들의 눈을 들여다보면 거의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갛습니다. 마침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님이 ‘한국인 의료 봉사팀이 원주민들 눈 치료를 위해 볼리비아에 온다’며 모든 게 무료이니 저희 동네 사람들도 모집해서 가라며 홍보 포스터를 갖다 주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으로는 모두에게 눈 검사를 해주고 필요하면 그 자리에서 수술도 해주고 약과 보호 안경도 준다기에 어렵게 버스를 구해서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입구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환자를 위한 의료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환자가 몇 명 다녀갔는지가 중요했습니다. 모두 실망했습니다. 방에는 의료 물품들이 한가득 있었지만, 다시 가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망하기는 목사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해와는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원주민들은 오히려 저를 토닥거리며 수녀님이 우리와 함께 줄을 서주고 끝까지 기다려 주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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