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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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시험 성적 100점 비결은 성당 공부방

볼리비아 <6>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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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6> 김효진 수녀(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 기도하는 공부방 아이들.

▲ 공부방 수업 시간 아이들과 함께.

▲ 교리 시간에 배운 것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









“수녀님 뭐 하세요?” 공부방 문을 열고 인사를 하며 제 안색을 살피던 라우라가 “수녀님, 피곤하세요? 무척 피곤해 보이세요” 하길래 “눈이 너무 아파서 눈을 못 뜨겠어요” 했더니 눈이 아플 땐 아기들 먹는 모유를 눈에 바르면 싹 낫는다며 얼른 알렉스 엄마를 부릅니다. 그러더니 “수녀님 눈이 아프시니까 빨리 젖 좀 짜 봐!”라고 말합니다.

“수녀님, 젖을 짜서 눈에 바르면 나아요.”

저는 제 귀를 의심하며 ‘어떻게 거절하지?’ 했는데 라우라 엄마는 더욱 적극적으로 정말 눈이 싹 낫는다는 것입니다.

“오~ 그래요? 그럼, 컵에 담아 주면 제가 눈에 넣을게요” 했더니 “안 돼요! 식으면 효과 없어요. 짜서 바로 눈에 넣으셔야 해요”라며 엄마들은 모처럼 할 일이 생겼다는 표정으로 ‘우리들이 수녀님 눈 아프신 거 고쳐 드리는 의사’라며 빨리 누우라고 무릎을 내밉니다.

예전 같았으면 거절하며 괜찮다고 했을 텐데 저는 어느새 라우라 무릎을 베고 누웠습니다. 자기들끼리 “수녀님 눈이 많이 충혈되었네…!” “잠을 못 주무셨나봐” 등 진단을 내리며 방금 짠 젖을 조심스레 떨어뜨립니다. 눈에 모유를 넣고 다시 눈을 뜨니 막이 생긴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보이고 곧 쑤시던 눈이 부드러워지고 눈이 맑아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 소경의 눈에 침을 발라서 눈을 고쳐 주셨는데 엄마들은 아픈 제 눈에 자신의 젖을 짜서 낫게 해 주었습니다. 침보다는 그래도 모유가 나은 것 같습니다. 선교지는 참 묘합니다. 내가 이들에게 무엇을 해 주는 것보다 이들에게서 항상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받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과 닮아 있어서 저를 감동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끈으로 저를 이곳에 묶어 놓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을 먹고 변하는 아이들

이곳 알토 원주민은 볼리비아에서도 가장 소외된 계층에 속합니다. 그중에서도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희생이 요구됩니다. 지역으로 아예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 있고 아이마라 인디오라는 이유로 차별과 냉대를 받습니다. 알토의 원주민들은 아래 남쪽의 유럽인들이 사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인종차별과 신분, 배움의 차이로 자신들의 땅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춥고 배고픈 땅에서 분리된 채 살아갑니다.

엄마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이렇게 친절하지 않은데 수녀님들은 우리를 도와주고 염려해 주시니 너무나 이상하고 놀랍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우리와 함께 식사하지 않는데 수녀님들은 왜 우리와 밥을 먹고 아무도 찾지 않는 여기까지 와서 사느냐고 묻곤 합니다.

청년들은 “부모조차도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해 주지 않는데 수녀님들은 왜 우리를 도와주세요?”라고 질문합니다. 양보와 배려라고는 할 줄 모르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큰일이 나는 줄 알며 각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청년들에게 봉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제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누구에게 봉사를 해요?”라며 당황해 하더니 이제는 성당에 오면 “수녀님, 성가 책을 꺼낼까요? 빗자루 주세요. 제가 할게요” 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희 공부방 교사 ‘제니’는 딸만 일곱 있는 집의 첫째입니다. 아버지는 제니가 어릴 때 집을 나가서 바로 옆 동네에서 다른 여자와 살고 있습니다. 둘째는 18살에 남자와 동거를 시작해 2년 살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지금은 이모를 따라 거리에서 음식을 만들어 팝니다. 고등학생 여동생 두 명은 동네 공중 화장실에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청소하고 밤 11시에 집에 돌아옵니다.

교사 ‘자넷’은 수녀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수녀들의 삶이 좋아 보여서 어떻게 하면 수도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수녀가 되려면 평생 결혼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고, 그건 문제없다고 했지만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었고 마침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들을 낳고 동거하는데 후회하는 눈빛입니다.



토착민 위한 기도로 함께해 주길

요즘 우리 공부방 아이들이 학교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을 학부모들이 와서 전해 줍니다. 학교에서 내주는 시험 문제가 너무 쉬워서 100점을 받아 온다며 엄마들 자랑이 늘어집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집에서 이렇게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면 아이들 머리가 날아간다”고 하기에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한국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성 마태오 성당 공부방에 아이들을 보내는 게 전부”라고 대답했다며 까르르 웃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종과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토착민을 소외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없어져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처럼, 정체성과 생존에서 위협을 받고 있는 토착민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이 정당한 존중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일 미사가 3시부터인데 2시도 안 돼서 뛰어오는 교리반 아이들에게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이렇게 일찍 왔어?” 했더니 비가 더 많이 올까 봐 일찍 길을 나섰다고 합니다. 비가 많이 오면 진흙 길은 걸을 수조차 없어서 성당에 못 오게 될까 봐 아예 일찍 왔다는 아이들의 이 마음을 하느님께서도 아시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세상 것으로 가득 차기 전에 먼저 하느님 것으로 채워 가며 그분의 좋으심과 선하심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그분과 함께 일생을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봉헌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제게 해주는 것은 무조건 좋아해 주는 것입니다. 저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은 먼저 좋아해 주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보이는 작은 친절, 환영해 주고 격려해 주고 물을 떠다 주고 의자를 내려 주고 좋은 교육을 제공해 주고 먹을 것을 주고 함께 놀아 주는 이 모든 작은 수고가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에 속하기를 바라면서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4300m 고산의 추위와 사람들의 냉대와 낯선 환경에 지레 겁먹고 안 된다고 여겼다면 지금의 이 아이들과의 만남은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저 너머로 가는 것, 저 너머로 가서 생명을 주는 것이 모든 선교사의 길이겠지요. 올해도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아이들 마음에 작은 별 하나가 뜨기를 빕니다. 열매를 맺도록 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기에 그분께 오늘도 아이들을 맡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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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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