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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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학교 공부 아닌 농장 일로 바쁜 아이들

김낙윤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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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님, 크리스마스 선물 고마워요!"
캄보디아 꼼퐁참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막대사탕을 내보이며 자랑하고 있다.
 


지난성탄 아이들에 막대사탕 나눠주고 사진 찍어줘
극빈층 아동, 농장일 땔감 모으기 등 노동에 시달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들 사랑과 자유로운 삶


    내 가방엔 늘 막대사탕이 가득 들어있다. 막대사탕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캄보디아 아이들과 나를 가깝게 연결해주는 고리다.

 하지만 무턱대고 나눠주다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기에 특별한 날이나 상황에서만 나눠주고 있다.

 지난 성탄 전날, `오늘은 모든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줘야지`하고 마음먹고 막대사탕으로 두둑한 가방을 짊어지고 꺼로까(캄보디아 꼼퐁참교구에 있는 작은 마을) 성당으로 향했다. 오토바이가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달려온다.

 "록어뽁(신부님)! 록어뽁!" "텃룹!(사진 찍어주세요) 텃룹!"

 아이들은 사탕만큼이나 사진찍기를 좋아한다.

 "잠깐만 기다려. 오늘은 다른 선물이 있으니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주는 거야"하고 단단히 일러두고 가방에서 막대사탕을 꺼냈다. 아이들 표정은 마치 봄날 들판에 피어나는 민들레마냥 환하게 피어올랐다.

 "모두 콜라 맛 하나, 딸기 맛 하나, 두 개씩 받는 거야!" 아이들은 사탕을 받아들고 요리조리 관찰한다. 막대사탕을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맛을 먼저 입에 넣고 재잘거린다.

 그런데 한 아이가 사탕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고 다른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넌 왜 안 먹어?" 아이는 말이 없다. "사탕 싫어해?"
 자꾸 물으니 아이가 대답한다. "집에 동생이 아파서 동생 갖다 주려고요."
 "……"

 "신부님 사탕 많으니까 두 개 더 줄게 동생 갖다 줘. 그리고 그 사탕 이리 줘 봐"하고 껍질을 벗겨 아이 입에 사탕을 넣어 주었다. 아이는 금세 다른 아이들과 함께 빨갛게, 까맣게 변한 혀를 내밀며 즐거워한다.

 "신부님 다른 아이들 데려와도 돼요? 성당은 안다니는데…."
 "응, 데려와."

 난 조심스레 가방을 힐끗 쳐다보며 대답했다. 아직 충분하다. 와우~ 동네 아이들이 다 모였나보다. 내 주위에 아이들로 빼곡하다. 수줍음에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는 아이들까지 직접 가서 나눠주고나니 가방은 이내 홀쭉해졌다. `산타클로스가 이런 기분일까?`하고 혼자 피식 웃었다.

 사진까지 찍어주느라 한 두 시간은 걸렸나보다. 잠시 산책을 했다. 그런데 저 멀리 양배추 밭에 두 아이가 보였다. 한달음에 양배추 밭으로 달려갔다. 아까 보이지 않던 녀석이다.

 "왜 사탕 받으러 안 왔어? 친구들 다 왔었는데."
 "밭에 물도 줘야 하고 동생도 돌봐줘야 하는 걸요. 그리고 사탕 별로 안 좋아해요."
 아~ 거짓말쟁이. "신부님도 이 사탕 가져가면 벌레가 다 먹어 버릴 거야. 그래서 그냥 여기다 놓고 갈래."

 막 속이 들어앉는 양배추 위에다 사탕을 올려놓았다. 나도 거짓말쟁이. "그래도 사진은 찍을 거지?" 아이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리고 동생을 데려와 낡은 옷을 걸쳐주며 머리도 한번 만져준다.

 성당으로 돌아오며 노을 너머로 멀리서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막대사탕을 빨며 서로 기뻐하는 아이들을. 오늘 석양은 유난히 아름답다. 마치 아이들의 불그스레한 볼처럼.

  몇 해 전만 해도 캄보디아는 4인 가족이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3~4달러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물가 인상이 원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없는 극빈층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돈벌이를 하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다.

 프놈펜 시내에서 구걸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 앙코르와트 주변에서 기념품을 파는 아이들, 넓은 고무나무 농장에서 하루 종일 힘겹게 일하는 아이들, 집에 땔감을 모아 오는 아이들… 이곳 아이들은 예닐곱 살만 되면 모두 일할 수 있다. 아니 일 해야만 한다.

 한국 아이들은 학원이다, 피아노 교습이다, 태권도장이다 해서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 캄보디아 아이들은 학교, 학원, 피아노 교습, 태권도장에 다니지 않아도 매일매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어른들 사랑과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인데, 세상 모든 아이들은 나라와 피부색과 환경 차이를 떠나 각자 작은 삶 안에서 그 기쁨을, 그 자유로움을 못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작은 기쁨을 나눠주고 싶다. 그들에게 막대사탕의 달콤함만이 아니라 그 작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그러나 누가 가르쳐주지는 않았어도, 배우지는 않았어도 아이들은 자신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또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래도 캄보디아의 아이들은 오늘도 바쁘다.


 
▲ 땔감을 주워 메고 가는 아이.
캄보디아 어린이들은 예닐곱 살만 되면 집안일을 거든다. 때로는 거리나 관광지에서 돈을 벌어 스스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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