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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난 생명의 우물 파는 선교사"

김낙윤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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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방치된 우물가에서 물 걱정을 하고 있는 주민들.
 

 
▲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 깨끗한 물이다.
파이프에서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자 아이들이 기뻐 어쩔 줄을 몰라한다.
 

   교구청 직원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다가오더니 내게 할 말이 있단다.
 "록어뽁!(신부님) 우물 고쳐야 하는 곳이 있는데요." "그럼 조금 있다가 가보자고."

 성당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이냐고 물었더니 멀지 않다고만 한다.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가방만 들고 나와 오토바이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한참을 달리니 시골길이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햇살이 뜨겁다. 비포장 도로, 달리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들 바퀴에서 쉴 새 없이 건기의 뿌연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가깝지 않다.

 "끄로마(캄보디아 전통 스카프)라도 하고 올 걸"하고 뒤늦게 후회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햇볕과 먼지로 숨이 막힌다. 오히려 직원이 말한다. "왜 모자 안 쓰고 왔어요." 난 그냥 웃고 만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품(마을)끄차`. 마을 중간쯤에 고장난 펌프식 우물이 보인다. 우물 주변에서 소를 키우는지 소 배설물들이 많이 보인다. 우물이 있기에는 부적합해 보이는 장소다. 오토바이를 세우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벌써 연락이 닿은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은 나에게 각자 우물이 없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몇 년 전 우물 파주는 NGO에서 마을에 우물을 여러 개 파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부족과 관리소홀로 고장이 나버렸다. 우물이 고장 나면 그들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수리비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방치하는 수밖에…. 벌써 몇 달째 파이프 둘레를 헝겊으로 둘둘 말아 놓고 멀리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쓴다고 한다. 아직 우물에 물이 말라버린 것은 아니었다. 파이프와 펌프가 고장 나 있었다. 수리해서 다시 사용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서 수리비가 얼마쯤 나올 것인지 물어 보았다. 마을 대표로 보이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이야기 한다. "30달러쯤 할 것 같은데요." 그들에게 30달러는 큰돈이다. 나는 경비가 얼마 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을 정확하게, 또 앞으로 관리를 잘 할 것을 약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도움이 절실했던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아닌 탓에 이것저것 신기해하며 물어본다. 아이들도 외국 사람인 나를 보며 신기해한다. 잠시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가 이들에게 생명의 물을 전하러 이곳에 왔을까? 아니면 우물을 파주러 왔을까?`
 사실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영생의 물`보다는 어쩌면 하루하루 생명을 이어가는 `우물물`일 것이다. 나로서는 이것이 단지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마을 사람들이 그 우물물을 통해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을 서로 나누고, 나아가 하느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막대사탕을 입에 문 아이들,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하고 성당으로 향했다. 돌아올 때는 햇빛과 먼지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캄보디아는 세계 물 부족 국가 중 형편이 열악한 곳 중 하나다. 우기가 되면 메콩강이 넘쳐 물바다를 이루지만 정작 마실 물은 부족하다. 그때문에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세균성 이질,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질병을 앓거나 죽어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많은 NGO들과 기업들이 우물 파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너무나 많은 곳에서 우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우물 하나 파려면 적게는 200달러에서 많게는 2000달러가 든다. 하루 3~4달러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임에 틀림없다.

 재작년부터 미국 타코마 한인성당(주임신부 임승철 신부) 청년들이 생명의 우물 자선 콘서트를 열어 얻은 수익금과 신자들 도움으로 캄보디아에서 `생명의 우물물파기`를 하고 있다. 난 단지 그 일을 돕고 있다.

 처음에 많은 고민을 했다. 현지 물 사정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어떤 방법으로 또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우물은 파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쯤 한국 정토회에서 라타나끼리에 학교를 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곳 봉사자와 연락을 한 후 5개 학교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리는 학교 측에서 계속 하기로 했다.

 곧 학교가 완공되고 아이들이 여러 사람들의 성금과 기도로 마련한 우물물을 마시며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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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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