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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중국(중) 만물박사 신부님들

이유성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중국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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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노인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산속 나환우들은 사람들 오해와 편견 때문에 더 아프고, 더 외롭다.
 


   중국 사천성 양산주는 조선족이 연변에서 자치구를 이루고 살아가듯 이족(彛族)이라는 소수민족이 꾸려가는 자치구다.

 이족은 만주족이나 몽골족처럼 대륙을 통일하고 통치하지는 못했지만 사천성과 운남성 일대에서 큰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고유 말과 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융성한 문화를 이뤘던 민족이다. 자치정부가 있는 서창시를 제외하고 농촌지역에서는 보통화(중국 표준어)가 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지금도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간다.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에 자리 잡은 이들 마을은 산이 높아 지리적으로 외부와 단절돼 있다. 농사짓기 힘든 지형 때문에 유목민처럼 가축을 기르며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때문에 산속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가축을 생활공간인 집 방안에 들이기도 한다.
 

 가축이 있는 곳에는 분뇨가 있기 마련이고, 분뇨는 온갖 세균과 해충을 불러 모으기에 이들 생활환경은 질병에 취약하다. 이 때문에 질병 가운데 피부병이 많고, 큰 후유증을 유발하는 한센병도 심심찮게 발병한다. 이들에게 한센병은 큰 공포다. 한센병에 대한 이해 부족과 공포 때문에 한센병에 대한 금기사항도 부지기수다. 사람들은 한센인들과 교류하지 않고, 그들이 사용하는 돈을 받는 것도 거부한다. 심지어 한센인들이 지나간 길은 비가오지 않으면 7일 동안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그래서 한센병은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는 게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이처럼 고립된 산속에서 생활하는 한센인들과 그들 곁에서 봉사하는 수녀님들 생활은 매일 매일 도전의 연속이다. 레이포 한센인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수녀님들은 태양열 온수기가 고장난 채 2년 동안 방치돼 있다고 했다. 그 곳에는 큰 댐이 들어설 예정이다. 머지 않아 이주해야 하기에 생활시설이 고장나도 보수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이사를 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온수기 수리기사를 부르자고 했더니, 수녀님들은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누가 이곳까지 수리하러 오겠느냐는 것이다. 출장비를 후하게 쳐준다고 해도 한센병이 무서워서 오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방법이 없었다. 직접 고치는 수밖에. 태양열 온수기는 한국에서는 많이 쓰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영구적인데다 연료비가 거의 들지 않아 보편화돼 있는 시설이다. 그래서 설비를 파는 상점에 가서 파손된 관을 교체할 새 관과 파이프를 사면서 수리방법을 조금 배워왔다.

 사다리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 깨진 관을 교체하고 파이프를 연결했더니 작동이 됐다. 따뜻한 물이 나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온수로 목욕하실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났다. 그 이후로 집안 구석구석 고장 난 물건은 모두 신부들 몫이 됐다. 신부들은 전기밥솥, 수녀님들 컴퓨터, 선풍기 등 못 고치는 게 없는 만물 수리공이 됐다. 직접 해결할 수 없는 물건들은 시내로 갖고 나와 수리해서 돌려드리곤 했다.

 
▲ 산골짜기 나환우마을 어린이들.
 
 
 그런데 한 마을에서 텔레비전이 망가졌다. 산속 주민들의 유일한 낙이 텔레비전을 보는 것인데 그게 망가졌으니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그 마을은 차가 드나들 수 없는 곳이라 모든 물건을 한 시간 정도 짊어지고 내려가야 하는 곳이었다. 수녀님은 실망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오늘 저녁에 드라마 마지막회를 꼭 봐야 하는데….` 말은 안 해도 꼭 그런 표정이었다.

 이걸 짊어지고 내려가서 고쳐와야 하나, 아니면 그냥 놔뒀다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나 망설였다. 텔레비전을 짊어지고 내려갔다 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심호흡을 했다.

 그런데 수녀님이 우선 고칠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런 산골에 이걸 고칠만한 사람이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일전에도 마음씨 좋은 기사가 마을로 출장수리를 온 적이 있다는 게 아닌가. 수리기사가 나병촌으로 출장수리를 온다는 것은 수녀님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덕분에 그날 고장난 텔레비전을 둘러메고 한 시간 산길을 내려오는 중노동을 면할 수 있었다.

 수녀님들이 한센인촌에 들어와 사는 덕에 인근 주민들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수녀님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한센병은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얼마나 큰 소득인가?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가족조차 발길을 끊은 한센인촌에도 사람들 온기가 감돌고, 웃음소리가 밖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제병과 포도주 가방에 온갖 공구를 넣어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희망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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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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