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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모잠비크(상) 아버님 전상서

천영수 신부(한국외방선교회 모잠비크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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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소 아이들과 함께(오른쪽이 천영수 신부).
  † 평화

 아버님 전상서.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공소 방문을 가다가 조금 험한 길을 만나 잠시 멈춰 섰는데, 문득 아버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모잠비크 밤리칭가교구에 속한 마주네본당에 터를 잡고 곽용호 신부님과 본당사목을 하면서 210여 개가 넘는 공소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 많은 공소를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방문하려면 둘이서 일주일에 두세 군데씩 찾아다니는 강행군을 해야 합니다.

 특히 우기가 되면 길이 험해 공소를 방문할 수 없기에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한 군데라도 더 찾아다녀야 하는데, 오늘따라 길 위에서 아버님께 신학교 입학을 허락받았던 그 날이 떠올랐습니다.

 # 단 둘이 공소 210여 개 순회

 선교사제가 되겠다는 꿈 하나만 갖고 나선 이 아들에게 아버님은 허락대신 "끝까지 잘 할 수 있겠느냐?"하고 물어 보셨지요. 그때 그저 철없는 마음에 "예"하고 답을 올렸습니다.

 어느새 아프리카 선교지에 선교사제로 살고 싶은 꿈을 이뤘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을 통해 아버님 질문에 대한 답을 지켰고, 현재 지키고 있고, 끝까지 지키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따라 간절해졌습니다. 아버님께 지금의 제 모습을 보여드리지는 못하지만, 큰아들이 이렇게 하느님 나라 일꾼으로 땀흘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아버님 모습이 떠올랐던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방문한 공소에서 4쌍의 혼인성사와 9명 아이들의 세례성사를 집전했습니다. 모잠비크 교회는 미사 전례를 모두 노래와 춤으로 진행하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오전 9시에 시작한 미사가 오후 2시가 돼서야 끝났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신부가 공소에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매우 기뻐합니다. 제가 공소를 방문하는 날이면 여러 마을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이슬람 신자는 물론이고 그 지역 이슬람 지도자들까지도 미사에 참례한답니다.

 처음에는 이슬람 신자들의 미사참례 본뜻을 몰라 참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들이 마을 일원으로서 신부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 미사에 참례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여러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하나되어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을 기쁘게 찬미 찬양할 수 있어 더욱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소마다 늘 혼배와 세례를 준비하고 저를 기다립니다. 그 때문에 각 공소를 찾아갈 때마다 미사와 더불어 각종 성사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베풉니다. 그럴 때면 이들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느끼고, 그 현장에 제가 있다는 기쁨을 덤으로 얻습니다. 또 제가 하느님 자녀로서 또한 아버님 아들로서 정말 좋은 몫을 택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공소를 방문하는 날이면 세례와 혼배성사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베풀어야 한다.
혼배성사를 마친 신랑 신부가 수줍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곳 생활이 많이 미숙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한 번 더 이해하지 못하고 제 방식대로 일을 처리할 때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만큼이나 제 안의 기쁨도 충만하니 더 힘을 내어 길을 헤쳐나갈 수 있으라는 믿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비록 언제 뵈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선교지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투신하고 있는 당신의 아들을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힘이 들 때, 기쁨이 넘치고 즐거울 때,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나눌 수는 없지만 하느님 안에서 함께한다는 사실 덕에 우리 삶이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공소를 다녀와서 씻고 아버님을 생각하며 글을 올리다보니 벌써 저녁미사 시간이 됐습니다.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멀리서나마 미약하나마 늘 기도드립니다.

 작은 기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모잠비크에서 아들 마론 신부 올림.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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