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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페로에제도(上) 멀고 먼 이 작은 섬에 "파견된 자"

이연희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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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수녀원은 `루터교의 땅` 페로에제도에서 유일한 가톨릭 공동체입니다."
(앞줄 가운데 필자)
 

  세계지도의 북유럽쪽, 아틀란틱해협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중간 지점에 눈꼽만한 점으로 표시돼 있는 페로제도 또는 페로에제도(Faeroe Islands)라는 나라에 발을 디딘 지 8년이 됐습니다.

 매년 경찰서에 거주연장 신청을 하러 다니며 끈질기게(?) 살아온 지 7년이 된 지난해, 영주권을 얻었습니다. 연초마다 서류를 챙겨 경찰서를 드나들 일이 없어져서 얼마나 기쁜지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페로에제도, 제주도보다 작은 자치국

 10년 전, 종신토록 하느님 사람으로 살겠노라는 어마어마한 서원을 한 후 이곳 페로에제도로 파견을 받았습니다. 난생 처음 사랑하는 내 나라를 떠나 그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아무 것도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작은 비행기를 갈아타고 2시간을 날아 왜소한 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어느 사막의 한복판에 도착한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드넓은 광야에 나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고, 땅은 무척이나 목마른 듯 갈라져 있었습니다. 동행한 관구장 수녀님은 "수녀원이 있는 수도 토르사븐에 가면 나무들을 볼 수 있다"며 위로하시더군요.

 페로에는 화산섬 18개로 이뤄진 제도(諸島)로 덴마크에 속하는 자치국입니다. 18개 섬을 합친 면적이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작고, 인구는 우리나라 일개 군 단위 정도입니다. 이곳에서도 국제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외국인들, 그리고 세상 곳곳에서 모여온 이주민들을 자주 만납니다. 어떻게 이 작은 섬나라를 알고 찾아 왔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하기는 한국 수녀원에서도 제게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가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몰라 우체국장님까지 나오셔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첫 고국방문 때 여러 번 들었지요.

 
▲ 18개 섬으로 이뤄진 페로에제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나라로 꼽힌다.
 

 이곳의 신비스럽고도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바위산에서 아주 작은 풀들이 비바람을 견디며 잘 자라고, 양들이 그 풀을 뜯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양들의 섬`이라는 뜻의 페로에제도는 양들의 천국입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도 양들이 유유자적 거리를 거닐고 있으면 차를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이 섬에 처음 와서 살았나?`하는 의문이 가끔씩 듭니다. 이 섬의 아래쪽에 있는 아일랜드 수도승들이 양들을 몰고와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후 루터교의 땅이 돼버린 이 섬에 한 주교님이 들렀다가 가톨릭을 부활시켜보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주교님은 즉시 로마에 있는 저희 수녀원 본부를 방문해 상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드디어 1931년 덴마크인 수녀님과 몇몇 자매들이 수녀 신분을 감추기 위해 평복을 입고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번에 도착하는 수녀님이 얼굴만 보이는 흰수도복을 입고 배에서 내리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는 우스운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수녀님들은 당시 열악한 교육환경을 보고 학교와 유치원, 유아원을 지어 하느님 사랑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낯선 데다 주민들이 가톨릭에 배타적이라서 고생이 많았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이 섬나라에 모여 있어

 수녀회는 성소자가 부족해 다른 교육시설은 모두 국가에 넘기고, 여기서 제일 큰 규모의 유치원(정원 85명)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유치원 원장님으로 일하셨던 루이사 수녀님은 3년 전에 정년퇴임을 하시고 현재 수녀 두 명이 남아 일하는데, 제가 두 명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 `파견된 자`로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뭐니뭐니 해도 언어를 배우는 일이지요. 여기서 57년 동안 사신 88살 수녀님 도움을 받아가며 재미있게 언어를 배웠습니다. 우리 가톨릭 공동체는 이 섬나라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성당에서 미사 후에 음식을 나눕니다. 여러나라의 맛있는 음식을 맛보노라면 온 세상이 이 작은 섬에 모여 온 듯한 가족임을 느끼게 됩니다. 섬에는 상주사제가 없어 덴마크에 거주하는 사제들이 번갈아가며 3, 4주 정도 머물다 가곤합니다.

 `파견된 자….` 수없이 많이 들어 온 단어이지만, 유난히 오늘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음미하게 됩니다. 단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지 싶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늘로부터 생명을 받아 이 세상에 파견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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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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