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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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볼리비아 산타크루즈(하) 마진우 신부(대구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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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더위 탓에 주일미사 외에는 가급적 일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쉰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장례와 병자성사입니다.

 더위에 지쳐 헐떡이고 있는데, 공소 수녀님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누군가가 돌아가셨답니다. 주섬주섬 예식 도구를 챙겨들고 나서는데 이번에는 공소 반장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병자성사가 필요하답니다. 장례가 급하게 생겨서 그걸 끝내고 가겠다고 하고는 일단 차를 타고 공소로 갔습니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공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장례를 청한 사람들이 옵니다. 함께 차를 타고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날은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날 정도로 참으로 더운 날이었습니다. 집 밖에는 허름한 리무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관을 실어갈 차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죽은 이를 위해서 마지막만큼은 예를 다 갖춥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다른 집과 달리 사람 수가 적었습니다. 사람들의 초라한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장례예절을 거행하는 중에 늘 하던 대로 가족에게 고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인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지금 고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기도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예식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작별인사 겸 성수를 뿌리는 예절에 가족을 초대했습니다. 그제야 이 어색하고 초라한 분위기 진상을 알 수 있었습니다.


 
▲ 병자성사를 받은 할머니. 할머니는 찜통처럼 더운 방에 홀로 누워 겨우 "응", "응"하고 대답을 하셨다.
 
 
 5살, 8살쯤 돼 보이는 두 아이가 집안에 꼭꼭 숨어 있다가 관에 성수를 뿌린다니 그제야 나왔습니다. 도대체 자신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예절이 끝나고 물어보니 죽은 이는 아이들 아빠이고, 엄마는 지금 장지에서 시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인을 물어보니 뭔가에 긁혔는데 감염돼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파상풍인 듯싶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을 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장례가 난 집을 나와 이번에는 병자성사를 주러 갔습니다. 할머니는 찜통처럼 푹푹 찌는 방에 힘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것도 남의 집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일이 바빠 나가버려 아무도 돌봐줄 이가 없어 옆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누워있는 방 옆방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펄펄 날리는 먼지와 소음을 헤치고 방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좀 미안했지만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웠습니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공소 반장은 내게 병자성사를 청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부르짖다시피 큰 소리를 말했습니다.

 "할머니, 하느님께서 죄를 다 용서해 주실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손을 덜덜 떨며 간신히 "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병자성사 예식 기도문을 외쳤습니다. 혹시 귀가 어두우셔서 못 들으실까봐 걱정됐습니다.

 임종 전대사를 주고 성수를 뿌린 후 이마와 양손에 성유를 바르고 마지막 축복을 해드렸습니다. 이어 할머니에게 다시 외쳤습니다. "할머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할머니 마음은 깨끗하니까요! 푹 쉬세요!" 할머니는 다시 "응" 하고 응수했습니다.


 
▲ 당뇨 때문에 고생하는 공소 성가대원 돈 파우스토씨.
지금은 회복돼서 조금씩 걸어다닌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다가는 걸까요? 우리 삶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요? 많이 가지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요?

 저는 행운아입니다. 적어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체험거리가 있는 곳에서 하느님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짧은 시간이나마 독자들과 지면을 통해 만나 제 삶을 나눌 수 있어 기뻤습니다. 앞으로 저는 한동안 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네요. 여러분 역시 주변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 다른 이에게 한 번이라도 손을 내미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선교지 후원계좌: 국민은행 612901-04-018957(예금주 마진우)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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