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선교지에서 온 편지] 파푸아뉴기니(상) 나는 영원한 이방인

박영주 신부(한국외방선교회 파푸아뉴기니지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한번 선교사는 영원한 선교사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복음을 전하다 영면(永眠)에 든 선배 선교사들은 내 선교적 삶의 증인들이다.
알렉시스하펜 묘역에서.
 
 
   "선교사로 살면서 언제 가장 힘들었고, 또 언제 가장 행복했나요?"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에서 선교사로 산 지 이제 겨우(?) 9년밖에 안 된 내가 한 원로 선교사 신부님께 물었다. 그 신부님은 "가장 힘들 때는 혼자 있을 때이고, 가장 행복할 때도 혼자 있을 때"라고 대답하셨다.

 더는 묻지 못했다. 내 마음을 알고 계신 듯이 `살아보면 내 말뜻을 알게 될 거야`하는 의미의 미소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 파푸아뉴기니에서 9년째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 아이들에게 `이방인`이다.
 
 
 
 #강적 중의 강적 `말라리아`

 이곳 마당대교구에 하느님 말씀이 전해진 지는 100년이 조금 넘는다. 그 신앙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젊은 현지인 신부 12명을 비롯해 미국인, 독일인,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등 외국인 선교사제들이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젊은 신부 5명도 이곳 사제단 일부다. 파푸아뉴기니 모든 교구가 그렇듯이 마당대교구도 사제가 부족하다. 아직도 외국인 선교사가 3분의 2를 차지한다.

 알렉시스하펜. 섬과 바다 그리고 야자수가 어우러져 한 폭 그림 같은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교구청이 있던 자리다. 여기에 성직자 수도자 묘지가 있다. 전면의 대형 십자가를 향해 머리를 두고 잠들어 계시는 이분들은 소망대로 선교지에서 신앙을 증거하다 삶을 마감하셨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기에 오셔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성당을 짓고, 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분들 선교활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 같은 후배들에게는 선교적 삶의 증인이시다. 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선교 열정에 뜨거운 불을 놓으신다. 지난해 선종하신 존경하는 신부님 무덤도 여기에 있다. 그분의 자상한 생전 모습이 떠오른다. 신부님은 자신보다 신자들을 더 사랑하셨다. 암 말기까지 신자들을 위해서 본당을 떠나지 않으시고 피를 쏟는 고통을 참아가며 삶을 봉헌하셨다. 원주민들 역시 신부님을 존경했다.

 또 다른 십자가가 눈길을 끈다. 20세기 말, 20대 후반에 이곳에 오셔서 채 1년도 사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몇 줄 안 되는 비문 약력이 마음을 저리게 한다. 선종의 직접 원인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자연스레 `아마도…`로 시작된다. 말라리아일 것이다. 말라리아는 강적 중의 강적이다. 나 역시 9년 동안 말라리아와 숱하게 싸웠다. 횟수를 헤아린다는 게 부질없는 짓이다.

 신부가 말라리아에 걸리면 사람들은 사제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매정하다고 탓했다. 밀림에서 말라리아에 걸리면 `휴식이 약`이기에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홀로 1~2주간 천장만 바라본 채 끙끙거리고 나면 어느 정도 거동할만하다. 그 즈음이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어둡고 답답한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 느끼는 안도감과 비슷하다. 공소방문 역시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소진된 체력으로 모기와 독충과 싸우는 일은 소소한 삶이면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전철 승차권 살 줄도 몰라

 선교사는 `피투된(던져진) 고독한 존재`라는 말이 실감난다. 휴가를 얻어 한국에 가면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이제 9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전철 승차권을 사는 방법도 모르고 충전하는 방법도 모른다. 휴가 나오기 전, 동료 형제들에게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들었던 말들이 사실이다.

 "안드레아 형제도 지하철 타기 힘들걸." 그 형제들은 이미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처럼 횡단보도를 건널 때 앞뒤와 옆을 몇 번씩 확인하고 어눌하게 쫓기듯 건넜을 것이다.

 나를 본다. 나는 분명히 한국 사람이 아니다. 어느 누가 봐도 한국 사회 부적응자다. 그렇다면 파푸아뉴기니 사람인가? 아니다. 원주민 아이가 피부가 다른 나를 보고 도망간 적이 있는 걸 보면 나는 파푸아뉴기니 사람도 아니다. 물론 내 피부에 손을 대보고 직모인 내 머리카락을 만지는 아이들도 있지만….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게 선교사다. 그래서 하느님 은총이 가장 필요한 사람인가 보다.

 바오로 사도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이곳에서 드러내려고 한다면 나는 시고 떫은 열매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있음을 증언하는 나의 지상 미션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하느님의 거룩한 일은 혼자 있음이 고통이며 혼자 있음이 행복이라면 그 길을 기쁘게 받아들여야겠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512601-01-102007  예금주: (재)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2-05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2

신명 6장 5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