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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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파푸아뉴기니(중) 누가 불쌍한 사람인가

박영주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양철지붕 집에 살면서 전구 불빛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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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낮 땡볕 아래에서 거행되는 원주민들의 성체거동 행렬.
 
 
   사목위원들과 `누가 우리 가운데 불쌍한 사람이고, 우리 도움이 필요한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면 흔히 고아나 홀몸노인, 노숙자 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곳 밀림에서는 이 주제가 실로 난해(?)하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밀림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우리 본당은 해안가와 떨어진 산속에 있다. 가장 가까운 마을에 가려고 해도 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여느 산골 사람들처럼 원주민들은 순박하다. 나 또한 이곳 선교사들이 그러하듯이 본당신부부터 사무장, 관리인, 식사 도우미, 외국인 노동자(?) 역까지 1인 5역을 한다. 태양열로 배터리를 충전해 10W 전구를 사용하고, 빗물을 탱크에 저장해 식수로 쓰고, 빨래도 직접 한다.

 신자 수는 약 1700명이다. 이들은 밀림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 가파른 산기슭이 많아 평지라고 해봐야 배구경기를 겨우 할 수 있는 터가 전부이다.

 이들은 산에서 채취한 나무와 잎으로 집을 짓고, 화전을 일군다. 산기슭 아름드리나무를 도끼로 쓰러뜨리고 태워서 밭을 만든 후 거기에 고구마와 따로 등 뿌리식물을 심는다. 옥수수와 호박, 오이 같은 작물도 심는다. 이 수확물들이 주식이다. 이들은 아침에 고구마ㆍ옥수수ㆍ호박, 점심에 옥수수ㆍ호박ㆍ고구마, 그리고 저녁에 호박ㆍ고구마ㆍ옥수수를 먹는다.

 그런데 이들은 사실 저녁 한 끼 넉넉히 먹는 편이다. 시간 대부분을 농사짓는 데 쓰지만, 하루 세 끼를 배불리 먹는 사람은 없다. 독을 품은 듯이 작열하는 한낮 태양은 모든 것을 정지시킨다. 열대지방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선입견을 한방에 날려버리고도 남는 불볕이다. 얼키설키 심어놓은 농작물을 바라보노라면 이들의 정성을 알 수 있다. "심으면 심은 대로 나고, 가꾸면 가꾼 대로 거둔다"는 말이 실감 난다. 땅은 나무를 키우기보다 죽이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비옥하다.

 원주민들은 새벽녘 동트기 전, 풀 줄기를 이용해 짠 그물 같은 커다란 망태기에 농작물을 가득 담아 3~4시간 산 넘고 물 건너 시장에 걸어간다. 고구마 40㎏을 팔면 한국 돈으로 2만 원 가량 받는다. 담배 3갑도 사지 못하는 금액이다. 원주민들은 그 돈으로 소금 한 봉지, 석유 0.5ℓ, 쌀 1kg, 생선 통조림 한두 개, 라면,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과 과자를 산다.

 해질 녘이면 아이들은 동네 어귀에 옹기종기 모여 잔뜩 기대를 걸고 장에 나간 부모를 기다린다. 우리 원주민 사회에는 `고아`라는 단어가 없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이 홀로 남게 되면 직계 형제자매들이나 친척들이 아이를 거둔다. 그래서 한 가정에 자녀가 10명 또는 그 이상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고아나 소년소녀가장이 없다. 공동체 모두가 동족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다.

 이들이 누구를 거둬 키운다고 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듣거나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묵시적으로 믿고 있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훗날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반드시 도와준다는 것을. 선교사 생활 초기에는 이런 공동체 질서를 모르는 탓에 마음고생을 했다.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없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적잖이 서운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는 내가 준 도움 그 이상으로 받았다. 오토바이가 도로에서 펑크 났을 때, 차가 수렁에 빠져 오도가도 못 할 때,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밀어주고 당겨주고 고쳐줬다. 석양이 질 무렵, 밀림 속에 하나 둘 피어오르는 연기는 더도 덜도 아닌 일용할 만큼의 양식을 준비하는 풍경이다. 단순하고 여유 있고 충만한 하루를 마감하는 이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할까?


 
▲ 공소미사 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데 이놈의 오토바이가 또 속을 썩인다.
누군가 지나가다 이 광경을 보면 마치 자기 일처럼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준다.
 
 #`양철지붕` 집에 사는 부끄러운 선교사

 마침내 사목위원들은 이런저런 얘기 끝에 결론을 내렸다.
 "불쌍한 사람이란 의약품이 없어 며칠씩 기침을 하다가 세상을 뜨고, 제때 약을 먹지 못해 병을 키우는 이들이다.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않고, 기도생활에 게으른 사람, 성사생활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 등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도 우리가 도와야 할 불쌍한 사람이다."

 점점 희미해지는 10W 형광등 아래 시계가 밤 9시를 알린다.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유난히 흐렸던 오늘 날씨를 탓한다. 물탱크에 모인 빗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일은 비가 내려 탱크를 채워주면 좋으련만,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

 원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은 양철지붕 집을 갖는 것이다. 양철지붕 아래 살면서 10W 태양열 전구 불빛과 물 걱정을 하는 나는 부끄럽게도 원주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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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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