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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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파푸아뉴기니(하) "그래도 가야 한다. 자 일어나 가자"

박영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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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 차림?
산 넘고 물 건너 공소를 찾아가려면 단단히 준비하고 출발해야 한다.
 
 
   혼란스러웠다. 몸조심하면서 마음 준비를 단단히 했건만 공소 방문 출발 사흘 전, 불청객 말라리아가 찾아왔다. 독한 말라리아약은 신체 저항력은 물론 정신력까지 뚝 떨어뜨린다.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공소 신자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세 달 전부터 내가 찾아오기만을 목 빼고 기다렸다. 정성 들여 완공한 사제관과 성모동산 축복식도 해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이 엇갈릴 즈음, 한 성구(聖句)가 내 무의식을 흔들어 깨운다. "자, 일어나 가자"(요한 14,31).

#소금과 고추장은 컨디션 유지용

 공소를 방문하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보통 한 달 전에 공소 회장들을 불러 사목회의를 한다. 그들을 통해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공소 현황을 취합한다. 전례 거행에 따른 준비도 시킨다. 전례 관련 준비물과 개인 소지품도 꼼꼼이 챙겨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약간의 소금과 고추장은 탈수 방지와 컨디션 유지용(?)이다.

 사탕도 준비한다. 사탕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내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볼 아이들 몫이다. 지난번에는 딸기 막대사탕을 나눠줬는데, 이번에는 초콜릿향이 가미된 사탕을 준비했다. 공소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5kg 정도 몸무게가 빠져 있을 날씬(?)한 몸매도 상상해 본다.

 이번에는 시구(Sigu)공소 축복식을 한다. 시구공소는 본당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공소다. 옛날에는 신부가 상주했다고 하던데, 내가 부임했을 때는 성당과 사제관은 반파되고 주변은 갈대와 잡풀 투성이였다. 100년 역사를 지닌 시구성당은 1970년대 큰 지진이 발생해 폐허가 될 정도로 파괴됐다. 원주민들이 모두 떠나 성당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그러던 것을 인근 마을에서 이주한 두 가정이 나서서 수리를 시작했다. 반파된 사제관과 성모동산 공사도 했다. 근래에 원래 땅주인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열 가정이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한 달이면 마칠 수 있는 공사가 2년 가까이 걸렸다. 차가 접근할 수 없어 건축 자재를 사람 손으로 일일이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양철지붕, 못, 시멘트, 페인트 등 모든 자재들은 신자들이 짊어지고 산 넘고 물 건너 날랐다. 짐 없이 걸어도 아찔한 구간이 많은 길인데 말이다. 그들은 자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산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공소신자의 고해성사.
 
 
#체력 한계가 묻는 선교의 정체성 

 지금은 우기(雨期)이다. 우중 산행은 반갑지 않은 복병을 만나기 일쑤다. 계곡 상류쪽 기상과 하류쪽 기상이 다르다. 날씨는 수시로 바뀐다. 갑자기 불어난 급류에 막혀 나뭇잎과 풀잎으로 만든 냇가 근처 움막에서 노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눈물어린 장면이 연출된다. 피에 굶주린 정글 모기들은 나를 둘러싸고 `환상적 파티`를 벌인다. 그 와중에 비에 젖은 비스킷을 먹는 내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 건너편 냇가로 마중을 나와 기다리던 원주민 신자들 몰골도 처량하기는 마찬가지다. 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건너편에 있는 신부를 걱정한다. "그만 돌아가라"고 소리치지만 극구 사양하고 기다리는 그들의 단호한 모습은 공소 방문의 압권이며, 밀림속 선교사 생활의 정점이다.

 공소 방문은 도전정신과 선교사 정체성을 강렬히 심어준다. 체력 한계에 부딪치면 `몇 달 후에 다시 이곳을 방문할 수 있을까?`하는 나약한 생각이 든다. 몸에서 더 빠져나올 수분이 없을 것 같은데도 땀은 계속 흐른다. 배낭은 벗어던지고 싶다. 옷과 신발도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중얼거린다.

 "내가 마셔야 할 잔입니까! 그래도 가야한다. 자, 일어나 가자."

#이틀이나 늦게 돌아왔더니

 어쨌든 공소 방문을 무사히 마쳤다. 본당으로 복귀하는 길, 마중나온 본당 신자가 십리 밖에서도 들리는 그들의 통신기구 `가라뭇`(나무 속을 파내 만든 북)을 쳐서 내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예정보다 이틀이나 늦게 도착했다. 신자들이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말라리아에 걸려 비틀거리며 출발했는데 예정보다 이틀이나 늦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들으니, 이틀이 지나도 내가 돌아오지 않길래 그들은 정글 어딘가에 쓰러져 있을 나를 후송하기 위해 들것을 만들고 구조대를 조직했다.

 여느 공소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몸이 파김치 됐다. 특히 피부가 많이 상했다. 모기와 벌레에 물린 건 둘째치고, 땀 알레르기로 생긴 피부병이 목 주위와 팔에 넓고 빨갛게 퍼졌다. 열대지역에서는 평생 안고 갈 십자가인 듯싶다.

 침상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산속에서 지낸 영상이 아른거린다. 영상이 확대되었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영상이 이어진다. 성체를 모시고 기뻐한 신혼부부 3쌍, 평생을 밀림에서 살아온 노인들, 사탕을 받아들고 입이 귀에 걸린 천사들 얼굴….

 그들을 만나게 섭리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세 달 후의 만남을 다시 기약한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512601-01-102007
             예금주 : (재)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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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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